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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2018.06.04(월) 22:21:53킴보(kimvo9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얼마전 천안시 홈페이지에서 본 내용이 머리 속에 남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관순열사 서훈등급이 낮아 대통령이 방문해 헌화조차 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현재 유관순 열사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3등급이라고합니다. 삼일절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아우내장터에서 자주독립을 외쳤던 유관순 열사인데, 3등급이라뇨?

오늘은 유관순 열사의 열정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유관순열사의 생가지를 찾았습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 338-1
주차가능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생가 앞에는  한옥집이 한채있는데요, 1919년 4월1일 생가가 일본에 의해 불타고  가족들이 거처할곳이 없어 이 건물을 지어 살았다고합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이곳에서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사이의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유관순의 집안은 개신교 신자였던 할아버지 유윤기와 숙부 유중무로 인해 일찍이 개신교 집안이 되었고, 유관순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유관순은 1916년 이곳 교회에 자주 들르던 샤프  선교사의 추천을 받아  공주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그리고 이화학당으로 편입하였다고 전해지는데요, 공주로 가기전까지 유관순이 지내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위에 언급한것처럼  1919년 4월 1일 아우내만세운동 당시 일본관헌들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유품 한 점 없이 전소되고 빈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91년 12월 30일 복원하였다고합니다.  생가는 복원되어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운동을 도모하던 소녀 유관순의 모습을 재현해놓았습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생가지를 돌아보면서 또 놓치지 말아야할곳은 바로 매봉교회입니다. 이곳이야말로 18살 소녀 유관순 열사가 용기를 내어 독립운동을 할수 있었던 정신적인 토대였을것입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마을 담장에는  벽화로 유관순 열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여하였고, 3월5일에는 학생단 시위에 참여하여 체포되기도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학교휴교령을 내렸고, 그로인해 병천으로 내려와 4월1일 장날을 이용하여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위에 언급한것처럼 3.1 운동을 대표하는 유관순 열사가 독립유공자 서훈이 3등급이라고합니다. 옥중에 수감되면서도 독립운동을 하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보지 못하고 순국했던 그녀에게 3등급이라니 제가 다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지금 국민청원사이트에서는  유관순 열사 서훈등급 올리기 위한 국민청원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미안한 마음을 이 청원사이트에 표현해보는건 어떨까요? 내년이면 삼일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주년에 유관순열사가 제대로 평가받고 당당히 대접 받기를 기대해봅니다.


국민청원사이트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29219 

6월 9일까지이니 꼭 늦지않게 참여하세요.

유관순 열사 생가를 돌아보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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