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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서정리 비선거리 비석군으로 엿보는 정산면의 역사

2023.05.15(월) 14:30:33 | 희망굴뚝 ‘友樂’ (이메일주소:coke4856@hanmail.net
               	coke4856@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정산면(定山面)은 청양군(군수 김돈곤) 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청양읍 다음으로 큽니다. 정산소재지의 중심인 서정리의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고려시대의 석탑인 '서정리 구층석탑(西亭里 九層石塔)'이 있습니다. 또한 서정리는 상권 중심지로 형성돼 있으며, 매월 5일과 10일 자마다 오일장이 서고 있습니다. 
 

정선오일장터

▲ 정산오일장이 서는 정산시장


지난주 정산에 갔다가 1시간 정도 개인적인 시간이 생겨 정산오일장과 주변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정산오일장은 정산상설시장 주변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었는데, 면 단위에 서는 오일장으로는 제법 규모가 컸습니다.

정선비선거리

정산 서정리 비선거리 비석군(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457)
 

정선비선거리이 비석군

정선 서정리 비선거리 비석군에는 철비(鐵碑, 사진 중앙)가 있다.


노거수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와 정산상설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다 '정산 서정리 비선거리(碑立路) 선정비'를 발견했습니다. 귀목나무 앞에 세워진 안내문을 읽어 보니, 조선시대 정산현과 군의 소재지였던 이곳에 선정비들이 나란히 서 있어 마을 이름도 비선거리라 부른다고 하는데, 군내에서 가장 오래된 석비와 유일한 철비, 마애비 등 비의 건립 연대와 형태가 다른 다양한 선정비들이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정산 서정리 비선거리의 비군들은 현재 일부만 남아 있는데, 1587년 돌로 만든 '현감 엄인술' 선정비는 400여 년의 역사가 있어 관내 최고(最高)의 비석이라고 하며, 현재 정산면행정복지센터 내에 있다고 합니다. 정산오일장터에서 본 비석 중에는 철비가 있었는데 '읍내면장박진포' 선정비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군내에 소재한 유일한 철비라고 합니다. 철비는 고을 관리의 치적이 훌륭하면 고을 백성들이 놋그릇과 쇠붙이를 모아 녹여서 선정을 기리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네요. 정산 비선거리의 석비 중 특이한 것은 석벽을 다듬어 글씨를 쓴 마애비로 내 둑에 본래 3~4기 정도가 있다고 전한다는데 모두 파손되고, 현재는 도로 오른편 암반에 1770년 새긴 '현감 윤봉주' 마애비와 판독 불명의 2기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안내문 중 가장 관심이 간 내용은 파손되고, 극히 일부만 정산면행정복지센터 내 백련지 옆에 복원한 자오교에 이용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산면행정복지센터는 정산상설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내친김에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청양군은 정산중학교 폐교 부지에 3,600 규모의 복지관과 2,899 규모의 체육센터를 2024년 말 준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 청양군은 정산중학교 폐교 터에 3,600㎡ 규모의 복지관과 2,899㎡ 규모의 체육센터를 2024년 말 준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정리비선거리비석군으로엿보는정산면의역사 1


정산 비선거리 선정비를 보고 나서 정산면행정복지센터로 향하다 지금은 폐교 터만 남은 정산중학교를 지나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동남쪽으로 가 보니 운치 있는 정자가 서 있고 그 옆으로는 개천이 있었습니다. 정산 서정리 비선거리 비군 중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다가가 봤으나, 쉽게 찾을 수 없었으며 인근에서는 상수도 공사 중이어서 오래 머물면서 살펴볼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정산중학교 폐교터 앞에는

정산중학교 폐교 터 맞은편에는 정산기미만세운동현장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정산중학교 폐교 터를 돌아 나오다 보니 정산기미만세운동현장(定山己未萬歲運動現場)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1919년 4월 5일 권흥규와 군중 500여 명이 대한제국 독립만세를 고창한 곳이라고 합니다. 3.1만세운동은 대부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에서 벌어졌는데, 정산 역시도 정산시장을 중심으로 기미만세운동이 벌어진 듯합니다.
 

정산육교

▲ 정산육교
 

정산육교에서 바라본 풍경1

▲ 정산육교에서 바라본 전경1
 

정산육교에서 바라본 풍경2

▲ 정산육교에서 바라본 전경2


정산중학교 폐교 터 뒤편으로는 정산육교가 놓여 있었습니다. 잠시 육교 위에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니 서쪽에는 정산터미널과 정산시장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정산면행정복지센터 등이 보였습니다.

서정리비선거리비석군으로엿보는정산면의역사 2

 

기미

▲ 기미의사 권흥규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으며, 선생의 순열비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정산육교를 내려와 정산면행정복지센터로 가다 보니, 인근에 정산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정산초등학교 입구 왼편으로는 정산면 행복마을터가 보였는데, 그 입구 왼쪽에는 정산중학교 폐교 터 맞은편에 안내석을 통해 이름을 알게 된 권흥규 선생의 순열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비 옆의 안내문을 읽어 보니, 선생은 청양 출신으로 1919년 정산향교 직원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4월 5일 정산 장날 오후 3시경 1백여 명의 장꾼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는 현장에 일본 헌병이 나타나 이 중 30여 명을 강제 연행하자 7백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격노하여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검거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함께 시위를 하던 선생은 일제 헌병의 발포로 인하여 그 자리에서 순국하셨다고 합니다.

정산

 정산면 행복마을터(청양군 정산면 칠갑산로 1861 정산커뮤니티센터 )
 

정산삼일

▲ 정산 3.1만세운동기념탑(청양군 정산면 칠갑산로 1861)


정산 면민들의 문화생활 공간인 정산커뮤니티센터(행복마을터) 주차장 인근에는 정산3.1만세운동기념탑이 서 있었습니다. 정산시장에서 정산면행정복지센터까지 오면서 본 안내판과 기념비 등을 통해 1919년 정산에서 성난 파도처럼 일어났던 3.1 만세운동의 면면을 어렴풋이나마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정산면

정산면행정복지센터(청양군 정산면 칠갑산로 1857/ 041-940-4191)
 

정

▲ 만향정(晩香亭)
 

자오교

▲ 자오교(子午橋)는 1969년 정산천 복개 당시 모두 해체되었는데, 석재 대부분은 멸실되었고 일부만이 정산면행정복지센터 내 자오교 복원 시에 사용되었다. 자오는 남북 방향을 의미한다고 한다.
 

교▲ 백련지(白蓮池)


정산면행정복지센터는 행복마을터 왼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팔각정자, '만향정'과 작은 연못, '백련지',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돌다리, '자오교'가 복원돼 있었습니다.
 

백련지는 1587년(선조 20), 송담 송남수(松潭 宋枏壽) 선생이 51세 되던 해 정산 현감으로 부임해 와 백련을 심은 연못으로, 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정자를 세워 만향정이라 명명했다고 합니다.
자오교는 1704년(숙종 30)에 건축된 석교로 녹야교(綠野橋)라고도 불립니다. 1966년 5월에 정산천에 콘크리트 교량이 가설되면서 석재 대부분이 멸실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정산초등학교 교장이던 우선구(禹善構) 선생께서 초등학교 교정에 보관 중인 석재 일부와 유사한 석재를 이용해 옛 모습대로 자오 방향으로 축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 일정이 있어 정산면 최고의 비는 돌아보지 못하고 귀가하게 됐는데, 1시간 정도 돌아본 청양군 정산면은 알면 알수록 궁금해지는 마을이었습니다. 다음에 들르게 되면 400여 년 역사의 '현감 엄인술' 선정비와 정산향교 주변도 자세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정산면에 오시면 여름에 더욱 아름답다는 백련지는 꼭 한 번 방문해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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