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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견훤왕릉

2023.03.31(금) 00:08:08 | 감자싹 (이메일주소:koreanair5@naver.com
               	koreanair5@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봉곡서원
▲ 봉곡서원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향토문화유산으로 제 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송시열과 오봉 이호민의 발의로 1712년에 여산 공촌면 장항리에 창건한 서원이었으나 고종 5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거 된 후 봉곡단소로 운영되다가 현위치에 사우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건립 할때는 서원이 아니라 향사우이었다고 합니다.

2019년 세게유산에 등재 되었다 하여 주목을 받았으나, 지금은 너무나 황폐하여 사실 실망하였습니다. 도무지 오래 되었다는 것 말고는 알 수 없는 신비의 서원이었습니다. 마침 외삼문은 굳게 잠겨 있어 그나마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동재와 서재 일 것이라 추측하면서 선비들을 상상해 보왔습니다.

견훤왕릉 1


견훤왕릉 2

약간의 실망을 안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견훤왕릉공원을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공원이니 논산시민이 즐겨 찾는 왕릉이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안내판을 보면서 약간의 능선을 따라 올라 가 보왔습니다.
30분전의 실망감을 또 다시 느껴보는 슬픈 날이었습니다.

견훤왕릉 3

견훤은 1000년을 이어온 신라 말기의 군인이면서 후백제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신라, 궁예, 왕건등이 후삼국의 패권을 놓고 수십 년간 다투었으나 아들 신검의 정변으로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 그 해에 아들 신검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것을 보고 견훤은 원수이었던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는 어쩌구니 없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고려 왕건과 합세하여 선봉으로 당신이 세운 후백제를 총공격하여 결국 신검의 나라는 멸망하게 되었고, 왕건이 신검을 사면해주자 견훤은 울분을 참지 못하여 몸에 병이와서 앓다가 사망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견훤왕릉 4

견훤왕릉 5

이 쓸쓸한 적막함은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요?
안내문 옆에 커다란 쓰레기 봉투만 놓여 있었습니다. 역사는 견훤을 어떻게 평가 하고 있는걸까요? 물론, 역사는 이긴 자의 것입니다. 그리고 견훤이 아들(신검)과의 감정 문제를 이러꿍 저러꿍 논 할 수 없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견휜왕릉
▲ 견휜왕릉

견훤왕릉 6

많이 소박한 후백제의 초대 왕릉이 이렇게 대접 받고 있는 것에 대해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그래도 견훤이 40여년을 국왕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과 후삼국시대의 가장 힘이 센 국가였음을  우리 역사는 알고 그 만큼 대접을 해 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견훤왕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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