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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부여 여행Ⅰ】생각하는 여행자로 돌아본 부여

2022.06.14(화) 23:28:53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여 전경

▲ 부여 전경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다고는 하나 함부로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습니다. 그처럼 마음은 벌써 해외 곳곳을 누비고 다니지만, 아직은 멀리 여행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던 차에 부여에 갈 계제¹가 닿아 망설일 것 없이 당일치기 여정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¹ 계제: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된 형편이나 기회'

부소산문

▲ 부소산문/사적 제5호인 부소산성은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소재한다.


세계문화유산 도시, '부여'하면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부여왕릉원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부여 당일여행 첫 번째 코스는 부소산성으로 정해졌습니다.
부소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수도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으며,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538년 (성왕 16)부터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였던 곳으로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삼충사

삼충사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이며, 부여군은 매년 9~10월 개최되는 백제문화제 때 세 충신에게 올리는 '삼충제'를 지내고 있다.
 

부여여행생각하는여행자로돌아본부여 1


삼충사는 백제의 충신이었던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입니다. 세 분의 영정을 모신 이곳은 1957년에 건립했으며, 1981년에 다시 지어졌다고 합니다.

성충은 백제 의자왕 제위(641~660) 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가 옥중에서 단식으로 죽은 충신입니다. 흥수는 660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백제의 요충지인 백강과 탄현을 방어하고자 한 인물로, 귀족들의 반대로 지키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끝으로 계백 장군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김유신 장군의 5만 대군에 맞선 싸우다 전사한 명장입니다.

일행 중 역사에 해박한 이는 삼충사를 둘러보며, "세 충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지만, 이 세 분을 기리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가 누구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그가 말한 비판의 대상은 의자왕을 말하는 것이며, 패망한 나라에 패배감을 안겨 주기 위한 승전국들의 계략으로 왜곡된 역사가 전해질 수 있음을 경계하고자 했습니다.
 

반월루

▲ 반월루


다음 코스는 일반적으로 많은 분이 찾는 곳은 아니었으나, 백제 토성을 관찰할 수 있어지만 걷기 쉽지 않은 부소산 서남쪽 언덕길을 따라서 올라 보았습니다. 백제 토성을 지나자 '반월루'가 나타났습니다.
반월루는 부소산성의 옛 이름인 '반월성'에서 이름을 따온 누각인데요, 원래 이곳에 남아 있던 수루가 없어지고 빈터만 남아 1972년 세워졌다고 합니다. '반월'은 위성사진으로 보면 백마강이 부여 시가지를 반달 모양으로 끼고돈다고 하여 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반월루에서 바라본 부여 전경

▲ 반월루에서 바라본 부여 전경


신발을 벗고 2층 누각에 오르자, 부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방으로 뚫린 부여의 반듯반듯한 도로는 백제시대에 조성된 것이라 합니다. 사비(부여)는 웅진(공주)에서 천도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획도시였던 지라 그 옛날 편리한 교통망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란사

▲ 고란사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이다.


유람선을 타러 가는 길에 잠시 부소산의 북쪽 백마강가 절벽에 자리한 '고란사'에 들러봤습니다. 고란사 뒤 고란초와 한 잔에 3년이 젊어진다는 고란약수로 유명한 곳이지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짧게 둘러보고 나오다 고란사 안내판을 읽어 보니,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백제 아신왕(?~405) 때 혜인대사가 세웠다는 설과 백제 사비성이 함락되자 낙화암(타사암)에서 떨어져 목숨을 버린 궁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고려 현종 때 세웠다는 설이 전하는데 자세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백화정

▲ 백화정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이다.


백화정은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낙화암(타사암) 정상 바위 위에 육각지붕으로 세워진 정자입니다. 660년, 백제 멸망 당시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부풍시사'라는 시모임에서 1929년에 건립했다고 합니다.
백화정의 안내판을 읽고 있자니, '일제강점기에 굳이 백제시대의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한 정자를 지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고란사 매표소(선착장)

▲ 고란사 매표소(선착장)
 

황포돛배

▲ 황포돛배


백화정에서 의문을 품은 채 내려와 선착장(고란사 매표소)에서 티켓팅 후 백마강 유람선을 타게 되었습니다. 백마강은 '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을 지녔으며,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km의 금강을 일컫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나니, 고란사 전경과 잘 드러나지 않던 조룡대와 낙화암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조룡대

▲ 조룡대


조룡대는 백마강 가운데에 있는 바위로 용바위, 용암이라고도 불립니다. 한국지명유래집에 의하면, 『여지도서』에 '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할 때, 강에 임하여 물을 건너려고 하는데 홀연 비바람이 크게 일어 소정방이 바위 위에 서서 흰말로 미끼를 만들어 용 한 마리를 낚으니, 잠깐 사이에 날이 개어 드디어 군사가 강을 건너 공격하였다.'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조룡대가 있는 강의 이름을 흰말의 강이라는 뜻에서 '백마강'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일행 중에 공주 사정에 밝은 한 명이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 일대를 근거로 전해 내려오는 백제의 패망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 왜, 공주에 구린내 전설 있잖아? 소정방이 백마강에서 낚아챈 용이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에 떨어져 죽고, 그 살이 썩어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하여 코를 들 수가 없을 정도여서 구린내 마을이라고 이름 붙었다잖아." 그러면서 "그게 다 소정방이를 미화하려고 만들어낸 이야기지 뭐겠어?"라고 되묻습니다.

낙화암

▲ 낙화암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부여 제1경이다.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를 암각해 주칠했다는 '낙화암'이라는 글씨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낙화암은 백마강가에 있는 높이 40m의 절벽입니다. 부소산성 팸플릿에는 낙화암에 대해 '백제 궁녀의 죽음을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해 후대에 표현이 굳어진 것'이라고 적고 있었습니다. 일행들은 낙화암 근처를 지나며 삼국유사에 '타사암'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당시 사비성의 규모와 백제 인구를 살폈을 때 3000명이라는 궁녀의 수는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크며, 낙화암 인근은 뾰족한 바위가 많은 지형이라 궁녀들이 강에 빠져 죽을 생각이었다면 다른 장소를 택했을 것이라는 사견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유람선을 타는 내내 들리는 노래의 가사말에도 낙화암과 삼천 궁녀라는 단어가 귀에 박히자, "백마강과 관련한 노래가 이 곡 하난가? 다른 노랠 틀어 주면 좋겠네."라는 의견을 보태는 이도 있었습니다.

구드래 나루터

▲ 구드래 선착장


볼거리, 즐길 거리 많았던 백마강과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구드래 조각공원 인근의 맛집을 찾았습니다. 식당 내에 '우어회'라는 메뉴가 적혀 있어 검색해 보니, 충청도 지방에서 '전어회' 대신 부르는 명칭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포털사이트 검색에 의문점이 많아 주인장께 여쭈니, "전어랑 우어는 완전 다르죠."라며 손사래를 친다. 뒤늦게 들어온 일행 중 하나가 그 모습을 보고 우어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백제 의자왕이 즐겨 먹었다는 우어회를 소정방이도 맛보려 했다는데, 백마강에 우어가 안 보이자 백마강은 백제를 멸망시킨 자신에게 우어마저 허락지 않는다며 한탄했다지. 우어야 4~5월이 제철인데, 7월에 쳐들어왔으니 우어가 보일 리가 있어?" 사비성에 대해 사전 조사가 제대로 안 된 당나라 군사에게 백제가 멸망한 이유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점심 식사까지 마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역사에 관심 많은 이들과 돌아다니다 보니, 부여 곳곳을 보이는 대로 혹은 들리는 대로 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도 자신의 의지로 마스크 착용을 선택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여행을 다녀보니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여행이었으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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