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공예를 배워볼 수 있는 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
2022.06.03(금) 22:13:12 | 서영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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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의 장항이라는 지역은 1920년대부터 대일 곡물 출항 항구로서 역할이 시작된 후 1931년 장항선 철도 개통을 계기로 더욱 비중이 커지면서 세워진 미곡 보관 창고 건물은 독특한 형식의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그 상부에 도리 방향으로 상호 연결된 목조 트러스로 정교한 지붕 틀을 가설해두었습니다.
서천군문화예술창작공간은 코로나19에 제한적으로 운영되다가 지금은 대부분의 클래스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옛날의 구조를 그대로 놔둔채 건물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이었던 장항 미곡창고는 현재 서천군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상시 활용을 위해 플로리스트, 유리공예, 포크아트, 마크라메, 서예, 문인화, 서양화, 유화 그리기, 전통매듭 반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CJ대한통운을 택배업을 하는 대표적인 회사로 알고 있지만 이 회사의 전신을 따라 올라가면 90여 년 전 일제가 설립한 조선 미곡창고 주식회사에 이르게 됩니다.
일제가 강제로 한반도를 병합하고 1920년대 이 땅에서 생산된 쌀을 무차별적으로 일본으로 퍼 날랐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조선의 백성은 굶주렸지만 일본 농가는 폭락된 쌀값으로 인해 불만이 올라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수출되는 조선산 쌀의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때 설립된 회사가 조선 미곡창고 주식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장항 미곡창고 같은 곳에 쌀도 저장했지만 화물업도 같이 병행했었다고 합니다. 도박시장과 같은 선물거래(先物去來) 미두 시장도 이때 같이 운영되었습니다.
다양한 강연뿐만 아니라 여러 배움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서천군문화예술창작 공관은 공휴일과 일요일, 월요일에는 휴관입니다.
유리는 삼국시대에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귀중품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장신구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의식기(儀式器)와 사리(舍利) 장치로서도 한몫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비싸던 유리는 지금은 약간의 비용만 지불하면 유리공예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유리공예를 배워보기 위해서는 납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앞치마, 팔토시, 안전장갑을 필수적으로 갖추고 해야 합니다. 유리공예는 그렇게 어렵지가 않은데 2시간이면 준비된 재료를 가지고 간단한 것들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장항은 수산업으로 유지되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지 바다의 고래가 상징물로 만들어져 있네요. 유리공예를 배우는 창작공간의 클래스는 유리 공예를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한 걸음씩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