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묘 (고인돌제 63호 기념물 유적지.
육지를 파서 인공적으로 강을 내고 배가 다닐 수 있게 운하를 하려던 선조들은 개착 중에 바위와 여러 가지 조건이 안 맞아서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굴포운하를 11차례나 뚫으려 했지만 실패 했다는 아픈 과거 역사다.
태안 인평리 와 어송리 간의 7km에 달하는 굴포운하 유적지 를 돌아보다. 굴포는 마을 이름이라고 한다. 외국에 파나마운하, 수에즈운하가 있듯이 태안 인평리와 서산 어송간의 500여 년 전 미완성의 굴포운하가 있다. 태안읍에 접해있는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운하 유적지다. 1134년 (인종 12년) 착공하여 1669년 (현종 10)까지 530여 년간 계속 되어 왔지만 결국 7km 중 4km 만 개착되고 나머지는 ‘완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굴포운하를 뚫던 자리는 다 메꾸어져 밑바닥의 흙탕물이 고여 별로 흐름 없이 악취만 풍긴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 63호 1966년에 등록된 지석묘(고인돌)는 서산시 둔당리 얕은 야산에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메주 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인돌은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둔당리에 있는 고인돌은 원래 2기가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1기가 파괴 되고 지금 남아 있는 고인돌도 일제 대 도굴 되었다고 한다. 고인돌에서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돌칼, 돌화살촉 등이 출토 되었다고 하는데,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은 고인돌에까지도 가만 두지 않고 도굴을 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