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태안 500년 전 굴포운하 유적지는 지금도 아쉬움 남아.

지석묘 (고인돌제 63호 기념물 유적지.

2022.04.17(일) 05:14:04 | 김기숙 (이메일주소:tosuk48@hanmail.net
               	tosuk4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선조들은 용감했다. 어찌 굴포 운하 뚫을 생각을 하고 시작을 했을까?

육지를 파서 인공적으로 강을 내고 배가 다닐 수 있게 운하를 하려던 선조들은 개착 중에 바위와 여러 가지 조건이 안 맞아서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굴포운하를 11차례나 뚫으려 했지만 실패 했다는 아픈 과거 역사다.  
  

태안 인평리 와 어송리 간의 7km에 달하는 굴포운하 유적지 를 돌아보다. 굴포는 마을 이름이라고 한다. 외국에 파나마운하, 수에즈운하가 있듯이 태안 인평리와 서산 어송간의 500여 년 전 미완성의 굴포운하가 있다. 태안읍에 접해있는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운하 유적지다. 1134(인종 12) 착공하여 1669(현종 10)까지 530여 년간 계속 되어 왔지만 결국 7km 4km 만 개착되고 나머지는 완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굴포운하를 뚫던 자리는 다 메꾸어져 밑바닥의 흙탕물이 고여 별로 흐름 없이 악취만 풍긴다
  

굴포운하가 아니라면 그냥 도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굴포운하가 착공이 되었다면 연도를 보아서 세계에 등제 될 뻔 했다고. 아찔한 생각도 해보는 유적지 탐방이다.

태안500년전굴포운하유적지는지금도아쉬움남아 1

▲굴포운하지 들어가는 표지판 

태안500년전굴포운하유적지는지금도아쉬움남아 2

▲굴포운하 육지에서 연결되는 바다사진 

태안500년전굴포운하유적지는지금도아쉬움남아 3

▲굴포운하지 전해오는 유래.

태안500년전굴포운하유적지는지금도아쉬움남아 4

▲굴포운하지 가는곳 다리를 건너서.

태안500년전굴포운하유적지는지금도아쉬움남아 5

▲굴포운하지 시작점.

태안500년전굴포운하유적지는지금도아쉬움남아 6

▲운하지길, 바다로 흐르는 물은 제대로 뚫리지 않아 흘러가지도 않는 물이 되었다.   

태안500년전굴포운하유적지는지금도아쉬움남아 7

▲유일하게 고인돌 1기만 남아있어 구경을 했다 

태안500년전굴포운하유적지는지금도아쉬움남아 8

▲고인돌 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 631966년에 등록된 지석묘(고인돌)는 서산시 둔당리 얕은 야산에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메주 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인돌은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둔당리에 있는 고인돌은 원래 2기가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1기가 파괴 되고 지금 남아 있는 고인돌도 일제 대 도굴 되었다고 한다. 고인돌에서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돌칼, 돌화살촉 등이 출토 되었다고 하는데,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은 고인돌에까지도 가만 두지 않고 도굴을 했나보다.


 

 

김기숙님의 다른 기사 보기

[김기숙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