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낚다...고왕암
2022.04.13(수) 21:29:15 | 팅커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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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rose-3@hanmail.net)
신원사를 둘러 보았다면 고왕암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연풍광만은 신원사에 비해 손색이 없는 곳이다.
나무에서 움트는 새 잎을 보며 천천히 숲길을 걸어본다.
의자왕의 아들 융이 당나라 소정방과 신라 김유신의 공격을 피해 숨었다가 붙잡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여 붙여진 암자, 고왕암 ...
봄을 느끼며 사브작사브작 걷다보면 작은 오솔길이 나온다.
신록과 녹음이 짙어 그늘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오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오르는 길이 다소 고생스럽다.
침묵하면 들린다고 한다.꽃과 나무들의 소곤거림을...
불교에서 물(다리)은 정화를 의미한단다.
물에 몸과 마음을 씻음으로써 비로소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나 피안의 세계에 이른다는 상징성을 지닌 극락교가 보인다.
극락교 아래는 유리처럼 맑은 냇물이 흐른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수량은 많지 않지만 물이 참 맑다.
세속의 때가 벗겨지도록 손을 씻어본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고개를 들어보니 고왕암의 처마가 보인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절집 마당 한켠에 피어난 수선화가 봄 햇살에 눈부시다.
지대가 높은 탓인지...산사는 이제 봄이 시작된 듯 싶다.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칠성, 독성, 산왕을 모신 삼성단은 여느 절집에서 보는 삼성각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한참을 머물러 본다.
백제 왕자 융이 백제가 멸망한 후, 7년 동안 이 암자의 동굴에서 머물다가 결국 붙잡혀 갔다고 하는 비운의 전설이 전해지는 융피굴을 찾고 싶은데...내눈엔 보이질 않는다.
삼성단 옆에 있는 원효굴이라도 봤으니 오늘은 만족해야지...
삼성단 왼쪽 거대한 바위벽에 약사여래 부조가 새겨져 있다.
자연석에 새겼는데, 늘어진 옷자락과 약병을 들고 있는 손 모양이 섬세하다.
예술감각이 뛰어난 석공의 정교한 작품인데... 비바람과 싸웠던 오랜 세월의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약사여래 부조 좌측 아래에는 백왕전이 버티고 있다. ‘백제의 모든 왕이 머무는 전각’이란다.
기암절벽에 둘러싸인 암자는 사람 소리 대신 새소리만 청아하게 들린다.
백왕전 건물 뒷쪽으로 호랑이를 옆에 둔 산신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작은 고왕암을 눈에 담고 고개를 들어 올라왔던 길을 가만히 되돌아 본다.
봄햇살에 녹아 있는 산사의 풍경이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해주는 듯 포근하다.
"인적 없는 옛 절에 봄은 깊어 가는데
바람 고요한 뜰에 꽃잎이 가득히 쌓이네
해질 무렵 구름은 고운 빛으로 물들고
산에는 여기저기 두견새가 우네"어느 고승의 선시가 생각나는 고즈넉한 고왕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