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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설날 연휴에 찾은 세계문화유산, 무령왕릉과 왕릉원

2022.02.07(월) 05:15:44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2021년 무령왕의 해, 공주시는 무령왕 동상을 건립했다.

▲ 2021년 무령왕의 해, 공주시는 공산성 앞 연문광장 회전교차로에 무령왕 동상을 건립했다.


2021년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이자 무령왕이 갱위강국을 선포한 지 15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였다. 이에 공주시는 백제 제25대왕, 중흥 군주 '무령왕'의 업적을 오래도록 기리고 다시 강한 공주시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 무령왕 동상을 건립했다. 그리고 무령왕 기념사업은 1월 8일(토)부터 매주 무령왕 동상의 회전식을 시작으로 올해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세계문화유산 '무령왕릉과 왕릉원'의 표지석

▲'무령왕릉과 왕릉원(공주시 왕릉로 37/ 041-856-3151)'은 2015년 7월 8일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지난 설날에도 사전에 모집한 일반 시민들과 방문자들을 대상으로 무령왕 동상 회전식이 진행됐다고 한다. 비록 회전식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집에 놀러 온 꼬마 손님들을 실내에서만 지내게 할 수 없어 나들이할 만한 곳을 물색하다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찾게 됐다.

모형 전시관

▲ 모형 전시관 입구 전경

모형 전시관 내부 전경

▲ 모형 전시관 내부 전경


공주시 웅진동에 위치한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도착하자, 2003년에 개관한 모형 전시관에 먼저 들렀다. 1997년 7월 15일, 고분군 보존상의 문제로 문화재청의 영구 비공개 결정에 따라 내부 관람이 중지되면서 폐쇄된 지 25년이 되었다. 격조 있는 왕릉을 실제로 돌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린 관람객들에게는 고분에 대한 교육과 다양한 체험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전시관 내에는 자녀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았고, 체험 코너는 긴 줄이 만들어질 만큼 인기가 높았다.

1971년 발굴 당시 5,6호분

▲ 1971년 발굴 당시 5,6호분(사진 공주시)

완전히 드러난 무령왕릉 입구

▲ 1971년 7월 8일, 완전히 드러난 무령왕릉 입구(사진 공주시)

무덤방에서 관재를 드러내는 모습

▲ 1971년 7월 9일, 무덤방에서 관재를 드러내는 모습(사진 공주시)


어린 동행자들에게 이것저것 알려 주고 싶은 게 많다 보니, 약 30여 기의 고분 중 정비된 7기의 고분에 대해 적힌 안내문과 사진 자료들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6호분

▲ 6호분은 1933년에 일본인 가루베지온(輕部慈恩)에 의해 조사되었다.

5호분

▲ 5호분 무덤 안은 벽돌 형태의 할석으로 무덤방(墓室)과 널길, 궁륭식 천정을 만들었다.

무령왕릉

▲ 무령왕릉은 무덤에서 묘지석(墓誌石)이 발견되어 무덤 주인이 백제 제25대 무령왕 부부라는 전이 확인되고, 사망 및 매장시점 등도 알 수 있다.


모형 전시관을 나와 남쪽 사면에 위치한 6호분, 5호분, 무령왕릉을 순서대로 돌아보았다.

6호분은 중국 남조 지배계층의 무덤 양식인 벽돌무덤으로 1932~1933년에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출토유물은 전해지지 않는다.
6호분 무덤방의 네 벽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었지만, 훼손이 심해 형체를 알아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어린 일행들이 모형 전시관에서 이 사신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여 재차 모형 전시관을 찾았기에 6호분의 특징만큼은 확실히 기억하는 계기가 됐다.

전형적인 백제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인 5호분을 두 번째로 살폈다. 모형 전시관에서 무덤방 입구 가 워낙 좁아서 어른들은 허리가 아플 만큼 들고 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1971년 7월, 5호분과 6호분의 배수구를 만들기 위해 봉토의 일부를 파 들어가는 과정에서 발견됐다는 무령왕릉을 세 번째로 돌아봤다. 백제사는 물론 한국 고대사 연구 활성화에 기여한 무령왕릉이지만,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을 보고 있자니 예로부터 최고 권력자의 무덤 위치는 극비에 부치는 이유를 알 듯도 했다.

1~4호분 전경

▲ 송산리고분군 1~4호분은 1927년에 조선총독부박물관과 공주공립고등학교 교사 가루베지온 개인에 의해 가각 조사되었다.


보통의 방문자들은 무령왕릉까지만 살피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일행은 북쪽을 향해 좀 더 올라 1927년에 조사된 1~4호분도 돌아보았다. 4기의 무덤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고분이 1호분이다. 4호분은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널길 앞에 문이 설치되어 출입은 가능하나 현재는 폐쇄된 상태다.

송산 정상에서 바라본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경

▲ 송산(宋山) 정상에서 바라본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경


1~4호분을 지나 송산 정상을 향해 다시 오르니, 공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어린 일행들은 무령왕릉과 왕릉원이 어떤 곳인지는 관심 밖이더니, 아는 곳이 눈에 들어오니 "저기가 공산성이네.", "저기는 금강이야." 신들이 났다. 송산 정상에서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내려다보고 나서, 숭덕전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으로 무령왕릉과 왕릉원 나들이는 마무리 됐다.

어릴 적 어른들을 따라 송산리고분군(현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왔을 때는 '무덤'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공포심에 가슴을 졸이며 내부를 둘러봤던 기억이 있다. 설날 연휴에 재미있는 곳에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섰다가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둘러본 어린 일행들은 훗날 이날을 어찌 기억해 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보여주고 싶고, 꼭 알려주고 싶었던 친척 어르신의 진심만은 나중에라도 꼭 알아 주길 바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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