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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공주목, 충청감영의 도시에서 관아 건물 톺아보기

2022.01.18(화) 08:27:54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12월 28일, 조선시대 나랏일을 보던 곳, '관아8곳을 보물로 지정했다
그 8곳에는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과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이 포함돼 있었다이 소식을 듣고, 전국에 단 세 곳만 남아 있는 선화당 중에 '공주 충청감영 선화당'이 빠져 어찌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금번 문화재청 보물 지정에서 
공주 충청감영 선화당이 빠진 이유는 뭘까? 근대화 과정에서 이리저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원형 훼손으로 개·보수가 여러 차례 있었던 탓은 아닐까?
아쉬운 마음에 웅진 백제의 왕성이 있던 고도일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공주목과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자리했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포정루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인 공주 포정사 문루는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에 소재한다. 

선화당(정면)과 혜의당(왼쪽)

▲ 혜의당(왼쪽)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선화당(정면)'과 함께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웅진동 3-1)에 옮겨져 있었다. 

혜의당(惠義堂)

▲ 혜의당(惠義堂)은 고려시대 공주목사가 행정업무와 재판 등의 업무를 수행하던 중심 공간이다.


혜의당(惠義堂)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의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과 충청감영의 정문이었던 '포정사 문루'와 함께 공주시 웅진동에 소재해 있었다.

【혜의당과 책장방】

옛 공주의료원 자리에 혜의당과 책장방이 복원되었다.

 옛 공주의료원 자리에 책장방(2019년)과 혜의당(2021년)이 복원되었다.  

혜의당은 논어에 나오는

▲ 혜의당은 논어에 나오는 '백성의 기름은 은혜롭고, 백성을 부림은 의롭다'를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혜의당은 2021년에 공주시의 공주목 복원·정비 계획에 따라, 원위치로 이전·복원되었다. 

1920년대 공주목일원(사진 공주시)

▲ 1920년대 공주목일원(사진 공주시) 

1970년대 공주의료원 관사 사용 당시 기와 교체 공사(사진 공주시)

▲ 1970년대 공주의료원 관사 사용 당시 기와 교체 공사(사진 공주시) 

1985년,  혜의당은 황새바위에 복원되었다.(사진 공주시)

▲ 1985년, 혜의당은 황새바위에 복원되었다.(사진 공주시)


공주목은 983년(고려 성종 2)에 설치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96년(고종 33)에 건축되어 1928년까지 공주목, 공주군청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충청남도 공주의료원 의사들의 숙소로 이용되었으며, 1971년에는 병원 증축으로 해체 후 철거되었다고 한다. 1984년에는 황새바위 아래에 복원되었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전소 이후 잔존한 초석 등의 부재를 수습하여 1993년 웅진동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2016년 공주의료원이 웅진동으로 이전하면서 2021년 원위치에 이전· 복원하게 된 것이다.

책장방

▲ 고을 수령이 개인 업무 또는 수령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던 '책장방(冊匠房)' 추정 건물도 복원되었다. 

책장방

▲ 복원전 2018년 촬영한 책장방(사진 공주시)은 '책실(冊室)', '책방(冊房)'이라고도 불린다.


혜의당 좌측으로는 2019년 고증을 통해 원형 복원한 '책장방'이 자리한다.
1889년 (조선 고종 26) 건립되어, 공주헌병파견대 사무실과 개인주택으로 사용되다가 2019년 복원되었다.

【충청감영 포정사 문루】

포정사 문루

▲ 충청감영 포정사(布政司) 문루(사진 공주시) 

 2018년, 공주시는 충청감영이 있던 자리에 포정사 문루를 새롭게 재현했다.

▲ 2018년, 공주시는 충청감영이 있던 자리에 포정사 문루를 새롭게 재현했다.


충청감영은 1602년 공산성에 설치되었다가 몇 차례 이전을 거친 후 1707년 봉황산 아래에 자리 잡았다.
포정사 문루는 충청감영의 정문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일제강점기에는 충청남도포정사, 금남루(金南樓)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28년 낙후됐다는 이유로 그마저 철거되었다고 한다.
이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한 뒤에는 일본인들에게 매각되어 지금의 교동성당 자리에 있던 일본식 사찰, '본원사(本願寺)'에 넘겨 본전 건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도 사무실과 공주 제2감리교회 등으로 사용되다가 1985년 해체되어 공주군청 경내에 보관되었고, 1993년에는 웅진동에 복원하였으며, 공주시는 
2018년 충청도 감영 도시로서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충청감영이 자리했던 곳에 포정사 문루를 재현했다.

【충청감영 선화당】

 충청감영 선화당은 1993년 공주시 웅진동으로 옮겨졌다.

▲ 충청감영 선화당은 1993년 공주시 웅진동으로 옮겨졌다. 

선화당(宣化堂)은 1938년에 지금의 충남역사박물관이 자리한 앵산공원으로 옮겨졌다.

▲ 선화당(宣化堂)은 1938년에 지금의 충남역사박물관이 자리한 앵산공원으로 옮겨졌다. 

충청감영 선화당이 자리했다.

▲ 충청감영 선화당이 백제박물관으로 사용됐던 자리에는 충남역사박물관 부속건물이 들어서 있다.

제민천변에 있던 공주 충청감영 선화당은 18세기 초 봉황동 소재의 공주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후 도청 이전 반대운동의 결과 1940년에 개관한 백제박물관의 건물로 사용되다가 1992년 국립공주박물관이 이전함에 따라 웅진동으로 옮겨져 복원되었다.  

▲ 금송 종자는 2월에 심어도 가을에나 모가 나온다고 한다.

▲금송 종자는 2월에 심어도 가을에나 모가 나온다고 한다.


며칠 전, 충남역사박물관을 찾았다가 옛 충청감영 선화당이 자리했던 건물 앞에서 금송 종자를 채집하는 어르신 한 분을 뵈었다.
5년 전에도 금송 종자를 주워다 모종을 내었는데, 1m 남짓 자랐다고 한다.
어르신은 충남역사박물관에 있던 금송 한 그루가 없어진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5년 전처럼 모종을 키워 주위 분들과 나누실 생각이라고 한다.
한 알 한 알의 씨앗이 많은 이에게 전해져 귀하고 소중하게 보전되길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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