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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공주시 귀농· 귀촌인이 한목소리로 부른 노래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2021.11.16(화) 08:40:36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9일(화)~11월 12일(금), 공주시 평생교육과에서 마련한 '2021 공주시 귀농·귀촌인 역사, 문화 탐방'이 실시됐다. 공주시에 정착한 귀농·귀촌인과 예비귀농· 귀촌인, 농촌에서 살아보기 체험단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번 행사는 두 개 팀으로 나누어 한 팀당 이틀에 걸쳐 탐방 일정을 진행했다. 공주무령왕릉과 왕릉원, 공산성, 공주석장리박물관, 공주 원도심 골목길 등 역사 탐방코스를 돌아보는 한편 박동진판소리전수관과 계룡산도예촌에서는 직접 문화 체험활동을 해보기도 했다.

여러 탐방지 중에서 '박동진 판소리전수관'에서 판소리 한 대목과 북장단을 익힌 강습 과정이 특히 인상적이였기에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 박동진 판소리전수관(공주시 무릉중말길 22-14/ 041-856-7770) 입구의 가을 풍경

2019년 7월의 공주역사인물 ▲ 인당(忍堂) 박동진 국창은 2019년 7월의 공주역사인물이다.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임펙트 강한 광고 멘트다.
의약품 광고에서 '제비를 후려치러 간다'는 뜻의 판소리 흥보가의 한 대목을 창(唱)하신 분은 인당(忍堂) 박동진 명창이다. 우리 소리의 대중화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박동진 명창은 1916년 7월 12일 충남 공주군 장기면 무릉리 365번지(현 공주시 무릉중말길 22-14)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8세였던 1933년 김창진 문하에서 판소리 〈심청가〉를 사사한 것을 시작으로 정정열, 유성준, 조학진, 박지홍 등의 문하에서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를 사사했다. 
17세기 후반경 형성된 판소리는 박동진 선생이 활동하던 20세기에 들어와 소리꾼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토막소리'로 불리던 것이 관습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1964년에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되면서 소리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법통을 중시하는 풍조가 확산하는 가운데, 박동진 명창은 〈흥보가〉를 다섯 시간, 〈춘향가〉를 여덟 시간에 걸쳐 완창하였다. 선생의 이러한 완창 공연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1973년에는 〈적벽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박동진 판소리전수관은 1998년 11월 23일, 후진 양성과 박동진 명창의 전통소리의 맥을 잇기 위해 충청남도와 공주시의 지원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전경1

생활관에서 바라본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전경
▲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전경2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입구 앞에는 노란 잎을 떨구며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가을 분위기가 내려앉은 고즈넉한 판소리전수관 내에는 유물전시관, 판소리전수관, 생활관이 배치되어 있었다.

박동진 판소리전수관판 전시실 전경
▲ 박동진판소리(유물)전시관 

전수관 안쪽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건물 하나가 먼저 보였는데, 박동진 판소리(유물)전시관이었다. 현재는 리모델링 중으로 관람을 할 수 없었다. 

전수관의 리플릿을 살피니, 인당 선생이 생전에 판소리 사설을 적어놓은 소리책, 완창 공연과 관련된 팸플릿, 연습 때 애용하던 북, 의상 등 판소리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공사가 마무리되는 11월 말쯤 유물전시관이 다시 개관한다고 하여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정자▲ 인당정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배롱나무꽃씨
▲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배롱나무꽃씨

판소리전수관 쪽으로 걸어오르니, 왼쪽에 정자 하나가 보였다. 박동진 명창이 소리도 하고, 생전에 그리 좋아하시던 배롱나무꽃도 즐기시던 '인당정(忍堂亭)'이라고 한다.

공주시 귀농·귀촌인 중에 꽃에 관심 있는 분이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꽃의 씨앗을 살피고 계셨다. 덕분에 화려한 꽃으로만 즐기다가 다음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백일홍 꽃씨를 살피게 되었다.

탐방단에게 전수관을 안내한 학예사는 7월에 이 세상에 오셨다가 7월에 저 세상으로 가신 인당 선생께서 생전에 그리도 좋아하신 꽃인데, 늦여름에 만개하는 배롱나무꽃을 못 보시고 돌아가셨다고 애석해했다.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교습 전경
▲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강습 풍경

공주시 귀농· 귀촌인들이 자리를 정돈하고 나자, '김양숙' 관장님께서 강습을 위해 전수관 내로 들어오셨다. 김양숙 관장님은 2003년 7월 8일 오전 9시경 인당 선생께서 향년 88세로 타계한 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의 전승교수로 박동진판소리전수관을 이끌고 계시다.

북장단을 배우는 공주시 귀농, 귀촌인들
▲ 공주시 귀농, 귀촌인들은 사랑가를 중중모리장단에 맞춰 가며 직접 배워 보았다.

김양숙 관장님은 탐방단에게 판소리 〈춘향가〉중 한 대목인 사랑가를 중중모리장단으로 가르쳐 주셨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이이이 내 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구음: 합 쿵 딱 쿵 쿵 딱 쿵 쿵 합 쿵 쿵 쿵)

소리, 취임새, 북장단, 부채 사용법까지 강습생들에게 아낌없이 가르쳐 주셨다. 쉽지 않은 판소리 강습에 나선 수강생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매년 7월에 개최되는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에 꼭 초대해야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강습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강습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공주시 귀농· 귀촌인 수강생들도 잘하든 못하든 적극적으로 노래하고, 추임새를 넣고, 북장단을 맞췄다. 중중모리장단의 구음에 '합'이 두 번 나오는데, 첫 번째 합에는 양쪽 북면을 쳐야 하고 두 번째 합은 손으로 북면을 치면서 북채로 북통을 동시에 쳐야 한다.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되는데, 막상 소리를 들으며 북장단을 맞추기란 생각같이 쉽지 않다.

"북장만만 하면 어렵지 않은데, 소리를 들으며 장단 맞추기는 어렵지요?" 관장님이 물어보신다.
"네." 
"그런데 소리는 힘들어 하는 외국인들이 북장단은 기가막히게 맞추는데 왜 그런지 아세요?" 관장님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질문을 다시 던지셨다.
"그게...... 한국말을 몰라서 소리는 한 귀로 듣고 그냥 흘리기 때문이에요." 
"아~ 하하하." 뜻밖의 정답에 전수관 안에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관이 뛰어난 생활관 뒤뜰 풍경
▲ 경관이 뛰어난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뒤뜰 풍경

소리도 배우고, 관장님이 들려주시는 에피소드도 들으며 하하호호 즐기다 보니, 정해진 강습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강습을 마친 관장님은 
"우리 전수관이 봄에도 예쁘지만, 가을은 진짜로 예쁩니다."
잘난 자식 남 앞에 자랑하듯 여닫이문을 활짝 여시더니, 전수관의 가을을 사진에 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김양숙 관장님께서 생활관 앞까지 환송해 주셨다.
▲ 김양숙 관장님께서 생활관 앞까지 나오셔서 탐방단을 환송해 주셨다.

김양숙 관장님께서는 전수관을 떠나는 탐방단을 배웅하기 위해 입구 근처까지 나오셨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우리 것을 이어나가시는 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곤 외마디 감사 인사뿐이었다. 

찾아가시는 길
▲ 찾아가는 길

집에 와서 며칠은 "이이이이 내 사랑이로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새로운 추억과 경험이 쌓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21 공주시 귀농·귀촌인 역사 문화 탐방'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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