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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평화의 길을 걸은 발자취에 미래지향적 가치를 새긴 답사길

2021.11.07(일) 12:18:21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인상적인 사건 하나를 신문기사에서 접했다. 영국의 모여행사에서 큰 상금을 걸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길은?" 이라는 물음에 답을 구하는 이벤트를 했다. 1등으로 당선된 이의 답을 보니,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지극히 평범한 답이었지만, 공감가는 바가 크다. 비단 여행만이 그렇겠는가.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마음맞은 이와 함께라면 즐기면서 할 수 있고, 제아무리 힘든 훈련이라도 웃으면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1월 3일(수), 오전 8시 30분~오후 12:30의 '조선통신사의 길, 평화를 걷다' 답사 프로그램이 그랬다.
이날의 답사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충청남도 그리고 공주시에서 후원하고,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의 2021년 세계유산 사업인, '조선통신사, 공주에 납시었네'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이다.

2017년 10월 31일,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확정되었다. 이때 등재된 기록물 중 공주와 관련된 것이 3점 있었다. 공주 출신 퇴석 김인겸이 지은 한글기행가사, 〈일동장유가〉와 공주에 소재한 충남역사박물관이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 죽리 김이교의 〈신미통신일록〉및 인장을 비롯한 유물 그리고 이인면 달산리에 묘소가 있는 죽당 신유의〈해사록〉이 그것이다.

 '조선통신사의 길, 평화를 걷다' 답사 프로그램은 김인겸, 김이교, 신유와 그들의 유적, 유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 누구나 참여하고 즐기는 운영·개발을 통해 문화향유 확대 및 국가의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활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한다.

10월 6일(수), 지역 내 대학생들의 1차 답사가 있었고, 10월 19일(화)에는 조선통신사 관련 단체 및 개인의 2차 답사가 진행됐다. 그리고 11월 3일(수)에는 공주시민을 대상으로 한 3차 답사가 이어진 것이다. 공주시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지만, 수십 년 교육계에 몸담았던 공무원, 향교·서원 관계자, 오랜 경력의 박물관 해설사, 문학계 인사 등 해박한 역사 지식을 갖춘 분들이 다수 참가하고 있어서 출발 전부터 답사에 거는 기대가 무척이나 컸다.

죽당(竹堂) 신유의 신도비와 해석문
▲ 신도비와 해석문이 보이는 죽당(竹堂) 신유(申濡)의 묘역

답사 일정의 첫 코스는 공주시 이인면 달산리에 위치한 죽당 신유 선생의 묘소였다. 묘역에는 후대에 세워진 신도비와 글씨가 흐릿해진 해석문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보호수 지정을 원하는 오래된 모과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었고, 대나무가 묘소를 둘러싸고 있었다. 가까이에 후손들이 살고 있어 관리는 되고 있었으나, 묘소의 땅 임자는 따로 있어 함부로 대나무를 베어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죽당 신유는 2020년 8월의 공주역사인물이었다.
▲ 답사 참가자들이 2020년 8월의 공주역사인물이었던 죽당 신유 선생의 행적을 살피고 있다.

답사 참가자들이 죽당 신유의 신도비 앞에서 국립공주대학교 역사학과 민경호 교수에게

2020년 8월의 공주역사 인물이었던 신유 (1610~1665)는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그의 대표적 문집인 『죽당집』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통신사의 기록 「해사록」이 실려 있다. 그는 1643년, 통신사 종사관으로 사행길에 올랐었다. 죽당집』에는647년(인조 25) 공산현감으로 걸군하여 부임하면서 지은 「후공주십경시(後公州十景詩)」도 실려 있다.
 
국립공주대학교 역사학과 '민경호'교수는 죽당 선생의 가계와 생애를 설명하고, 신도비에 대한 해석과  ▲ 국립공주대학교 역사학과 '민경호'교수는 답사 참가자들에게 죽당 선생의 가계와 생애를 설명하고, 신도비에 대한 해석을 이어갔다.

답사를 인솔한 공주대학교 역사학과 민경호 교수는 조·일관계가 우호적으로 유지되는데 기여한 통신사의 파견 배경, 주요 인물, 사행 구성, 사행 경로, 관련 서적 등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나갔다.

죽당 신유 선생의 묘소
▲ 죽당 신유 선생의 묘소는 가장 앞쪽이다.

공주대 민경호 교수가 동자상의 총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공주대 민경호 교수가 죽당 선생의 아버지 신기한의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동자상의 총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혼
▲ 공주대 민경호 교수가 혼유석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답사
▲ 답사 참가자들이 상석과 구름 모양이 남아 있는 혼유석 인근의 풀을 제거하고 있다.

죽당 신유의 묘역에는 항렬이 낮은 아들들의 묘가 아래쪽에 있지 않고, 신유의 부친인 신기한(가운데)과 우애가 돈독했던 아우 신혼(오른쪽)의 묘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었다.

부친 신기한(申起漢)의 묘 앞에는 동자상 2기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 묘역의 아래 능선 모퉁이에는 신유의 8세손인 신승휴(申勝休, 1840~1925) 묘가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답사 참가자들이 퇴석(退石) 김인겸 묘소로 가고 있다.▲ 답사 참가자들이 퇴석(退石) 김인겸(金仁謙)의 묘소를 향해 오르고 있다.

두 번째 답사 코스는 공주시 무릉동에 있는 퇴석 김인겸(1707~1772)의 묘소였다. 김인겸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힘들게 살았으며, 영조 29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관직에는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그의 신분 계급과도 연관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그의 나이 57세 때인 1763년 계미통신사에서 종사관 김상익(金相翊)의 서기로 참여했고, 이때 견문한 내용을 『일동장유가(日東壯游歌)』로 저술하여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퇴석 김인겸의 묘소
▲ 퇴석 김인겸의 묘소

김인겸의 묘소는 김인겸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공주시 무릉동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 김씨들이 이 지역에서 세거했으나, 김인겸 사후 집안 노비들이 집에 불을 질러 자손들이 이곳을 떠나 타지로 이동했다고 전해진다. 안동 김씨 세력의 몰락 이후 안동 김씨의 후손임을 드러낼 수 없었던 당시 사정으로 김인겸의 묘소는 지역 사학자들이 찾아내기 전까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묘소는 보존 상태가 매우 안 좋아 아카시아 나무가 여러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며 봉분 한가운데 굵은 나무가 자리한 상태라 답사 참가자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총 4권의 한글기행가사인 일동장유가의 4권 마지막 부분에 통신사로 갔다 온 내용을 고향인 공주에서 쓴다는 내용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김인겸의 일동장유가는 공주에서 집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인겸의 가비(歌碑)는 공주시 전막 금강교 옆에 위치하고 있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 강독사(講讀師) 소암 정규헌 선생이 강독공연을 하고 있다.
▲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 강독사(講讀師) 소암 정규헌(丁奎憲) 선생이 강독공연을 하고 있다.

세 번째 답사지는 죽리(竹里) 김이교(金履喬, 1764~1832)의 조부인 김시찬(金時粲)과 관련 있는 공주공산성 동쪽에 있는 누정, '만하루(挽河樓)'였다. 1752년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한 김시찬은 약 2년 3개월 정도 근무하며 이곳의 농업용수와 식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만하루 뒤에 연지(蓮池)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에 조예가 깊은 참가자들이 공주대 민경호 교수의 해설에 첨언을 하고, 평소 궁금했던 질문이 쏟아지면서 일정에 약간의 차질이 빚어졌다. 다음 일정으로 정규헌 강독사의 강독을 듣기 위해 공산성 금서루에서 민경호 교수로부터 설명만 듣고 마지막 답사지인 충남역사박물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인 소암 정규헌 강독사는 먼저 자리하여 답사단을 기다리고 계셨다. 강독사는 설낭, 즉 이야기주머니라는 별칭으로도 불렸으며, 글을 읽지 못하는 이나 글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던 사람들을 말한다.

노구의 정규헌 강독사는 거동은 힘들어 보였으나,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기개가 넘쳤다. 일동장유가의 일부분을 들려 주시고 나서, "말은 우리말이 세계적이 될 지 모르겠지만, 오랜 세월 겪어 보니 우리 글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우니 우리의 글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충남역사박물관의
▲ 충남역사박물관 운영부장인 '서흥석' 책임연구원이 죽리 김이교의 초상화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 

일동장유가의 강독이 끝나고, 충남역사박물관의 '서흥석' 책임연구원으로부터 이곳에 기증되어 보관, 전시 중인 유물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충남역사박물관에서는 죽리  김이교가 1811년 신미통신사 정사로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에 작성한 『신미통신일록(辛未通信日錄』과, 인장, 호패, 교지, 교서 등 2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김이교 유물 일괄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유의 인장도 충남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조선통신사의 길, 평화를 걷다'
▲ '조선통신사의 길, 평화를 걷다' 답사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신유 묘소에서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충남문인협회의 '최대승' 시인이 김인겸 묘소 및 답사 일정을 마치고 소회를 시로 옮겼다.
▲ 충남문인협회의 '최대승' 시인은 김인겸 묘소 및 답사 일정을 마치고 감회를 시로 옮겼다.

답사를 마치고, 답사단에 참가한 충남문인협회의 '최대승' 시인은 직접 찍은 퇴석 김인겸의 묘소 사진과 함께 한 수의 시를 남겼다. 그는 무릉동 골짜기로 올라가는 버스의 힘겨움이 마치 본인이 걷는 것처럼 느껴졌고, 퇴석 선생의 묘소를 마주했을 때에는 중등교과서에 실릴 만큼 위대한 작품을 남긴 분이 신분의 장벽을 넘지 못한 아픔과 죽어서까지 그 아픔이 계속되는 듯한 감회에 시를 남기게 됐다고 전했다.

'조선통신사의 길, 평화를 걷다' 답사 프로그램에 참가하신 분들은 최대승 시인과 마찬가지로 "내가라도 나무 뿌리를 뽑아내고 싶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계실 만큼 특별한 감회를 토로하신 분이 많았다. 같은 생각으로 같은 길을 걸어 주신 분들과 함께했기에 이번 답사길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오래 기억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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