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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학농민운동 내포지역 최대 승전지라는 예산 관작리 전투

2021.09.05(일) 16:11:10 | 초지일관 (이메일주소:skdlem23@naver.com
               	skdlem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식은 주먹밥 먹고 볏짚 이엉 엮어 이불 삼고 찬서리 밤 말뚝잠 잤어도 토색질에 세월 네월 끝도 없고 무명잡세 일삼는 탐관오리 징치하고 관게창생 보국안민 좋은 세상 우리 손으로 만드세 사람이 한울인 세상 보국안민 농민군들아 동학하러 가세 온세상 끝까지모두 함께 가세

주린배를 잡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일어났던 것이 동학농민운동입니다. 보통 동학농민운동의 전투는 공주가 유명하지만 예산에도 공원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내포지역최대승전지라는예산관작리전투 1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민란은 왜 일어났을까요. 여기서 언급한 민란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나 반정 등에서 소외된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민초들이 일어났던 그런 운동을 의미합니다.

동학농민운동내포지역최대승전지라는예산관작리전투 2

특히 시대가 어지러운 가운데 그 속에서 탐관오리들이 득세하고 일본군들이 들어왔던 그때 동학농민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동학농민운동내포지역최대승전지라는예산관작리전투 3

내포지역에서 가장 큰 대승을 거둔 곳은 바로 관작리라는 곳으로 내포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내포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의 지휘자 박인호와 동학농민군은 1894년 10월 24일 오후 면천의 승전목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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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27일 관군과 민보군을 포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며 내포지역의 최대 승전지로 알려지며 동학유적지로 남아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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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은 사실 유생이나 양반들에게 외면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민초들이 먹고사는 문제보다 계급을 흔들 수 있는 그 운동을 지지 않지 않고 오히려 관군과 합세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19세기 말에 한반도는 말 그대로 농민들은 착취와 더불어 먹고사는 문제의 막 다른 길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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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에 동학농민운동혁명 기념공원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가 우연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전라도 지역은 수없이 많이 가보고 공주에도 가보았지만 예산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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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의 전국적인 봉기로써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동북아시아 침략전쟁에 맞선 반침략 독립운동이자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위정자들의 탐욕이 초래한 역사인식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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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벽이라는 동학농민운동이라는 횃불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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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사람들이 모여 일본군과 조선관군과 처절하게 싸웠지만 신식무기를 가진 일본군의 무기에 죽창이나 농기구 등은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농민군을 학살하듯이 사용된 무기는 미국 남북전쟁 때(1862경), 리처드 J. 개틀링(1818~1903)이 발명한 개틀링 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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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4, 약칭: 동학농민 명예회복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17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에 동학농민혁명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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