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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봄에 가래질이나 허여를 보세”

예산농악보존회 ‘전통농업 재현’… 옛농요 되살려 <br>장정 세 사람 몫 ‘일소’도 무논으로… 힘찬 쟁기질

2021.04.26(월) 14:13:11 | 관리자 (이메일주소:srgreen19@yesm.kr
               	srgreen19@yes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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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소가 다랭이논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어허리 넝청 가래 호-”

봄비가 논과 들을 촉촉이 적셔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절기 ‘곡우’가 막 지난 22일, 구성지고 힘찬 가락이 대흥 금곡리 다랭이논에 울려 퍼진다.

이날 예산농악보존회와 주민들은 사라져가는 전통농업을 재현해 후대에 전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회원 8명은 예로부터 민초의 상징인 흰옷을 입고 상투 튼 모습으로 무논에 발을 적셨다.

특별 손님도 찾았다. 논밭에서 쟁기를 끌며 장정 세 명 몫을 했다는 ‘일소’다.

이웃한 홍성군 홍동면 홍원리에서 15살 때부터 일소를 키워온 함동식(70) 어르신의 ‘이랴’ 소리에 발굽을 내딛자 쟁기보습이 진흙을 퍼올리며 논바닥을 힘차게 가른다. 우리지역에선 키우는 이가 없어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진귀한 풍경이다.

길이 완전히 들지 않은 두 살배기 암소는 이따금 멈춰 서 고개를 몇 번 내젓기도 하지만, 2년째 호흡을 맞춰온 함 어르신의 손길에 다시 발걸음을 뗀다. ‘워’하면 멈추고 ‘쩌쩌’하면 왼쪽, 고삐를 당기면 오른쪽으로 간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수십 년 전 집에서 돌보던 일소가 눈에 선한 듯 “쟁기를 얕트게 잡어”, “심(힘)이 딸리는 게 아니여” 등의 말을 주고 받는다. 꾀를 부리던 소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자 “어이고 말 잘 듣네”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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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스랑으로 논두렁을 앙구는 모습. 흙을 다지고 매끈하게 만들어야 물이 새지 않고 풀도 안 난다. ⓒ 무한정보신문

‘논두렁 앙구기’도 눈길을 끌었다. 산을 깎아 만든 다랭이논은 비가 오지 않으면 물 대기가 여의치 않아 한 방울도 귀했다. 말 그대로 ‘천수답’이다. 혹여 논물이 새어나갈까 모심기에 앞서 튼튼하게 보수하는 일이다.

쇠스랑으로 묵은 논두렁 안쪽을 파낸 뒤 논바닥 흙을 그 위에 쌓는다. 물이 새는 곳은 볏줄기를 걷어낸 흙을 채워넣어야 한다. 발로 밟고 삽으로 다져 표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맥질’이 잘 되면 풀도 덜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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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사람이 한 마음이 돼야 하는 오목가래로 흙을 퍼올리는 예산농악보존회원들. ⓒ 무한정보신문

다섯 사람이 한마음이 되는 ‘오목가래’도 선보였다. 가랫날을 박은 뒤 2미터 남짓 되는 긴 자루에 연결한 볏짚을 두껍게 꼬아 만든 밧줄 4개를 한 사람씩 잡고 ‘어영차’하며 당기면 한가득 흙이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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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잔 걸친 이희철 어르신이 즉석에서 뽑아내는 가락이 흥겹다. ⓒ 무한정보신문

덕산 옥계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모로부터 농요를 전수받았다는 이희철(75) 어르신은 신명나는 가락으로 흥을 돋운다. “바람 불구 봄이나 오는디”, “가래질이나 허여를 보세(덕산 가래질소리)”를 선창하면 다른 회원들이 “어허리 넝청 가래 호”하며 후렴구를 뽑아올린다. 높고 낮은 소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주고받는 노래에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그는 “아버지가 올해 98센데 모심는 소리와 타작하는 소리, 바심하는 소리까지 전수 받았어요”라며 “혼자하면 호락질이고, 더불어 하면 품앗이에요. 지금은 전부 기계화됐지만 50여년 전까지만 해도 뭐든 손으로 직접 해야 했어요. 함께라서 어려운 줄도 모르고 할 수 있던 거에요”라고 회상한다. 막걸리 한 잔에 불콰해진 어르신이 즉석에서 노래를 뽑는다.

예산농악보존회원인 양승도(58) 금곡리 이장은 “3개월 전부터 이걸재 선생 등이 채록한 예산농요를 들으며 연습했어요. 행사장소를 이곳으로 택한 것도 전통농업을 최대한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서에요. 다른 마을은 경지정리가 돼 네모반듯한 논이 대부분이에요. 이런 다랭이논이 그대로 남아있는 데가 많지 않죠”라고 설명한다.

이들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행사 총감독을 맡은 이걸재 전 공주시 석장리박물관장은 “예산은 옛농요 맥이 끊어졌어요. 삽교 창정리와 덕산 시량리 등 여러 지역에서 말뚝박는 소리, 가래질 소리와 같은 다양한 노랫말을 채록해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5월 모내기부터 10월 추수까지 논농사 전과정을 전통농업으로 선보일 계획이에요”라며 열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구성진 우리지역 옛 가락을 듣고 자랄 모들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튼튼하게 뿌리내려 영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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