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제102주년 3·1절을 맞아 찾은 유관순열사 사적지

유관순열사 생가지, 기념관, 아우내거리

2021.03.07(일) 09:29:16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은 학창 시절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고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었던 것이라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35년간 꾸준히 벌여온 항일독립운동의 꽃은 바로 3·1운동이었지요.
 
조선 땅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비폭력 해방운동은 이곳 아우내에서도 드높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1
 
유관순열사는 당시 이화학당 2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1919년 4월 1일 3천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갖은 폭행과 고문을 못 이겨 1920년 9월 28일 열아홉의 어린 나이로 순국하였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2
 
유관순 열사의 사적지는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신길 38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동네 뒷산처럼 보이는 매봉산 기슭에 유관순열사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1km 정도 산을 반 바퀴 돌아가면 유관순열사 생가가 있습니다. 산 중턱에는 초혼묘가, 정상에는 유관순 열사가 횃불을 올렸다는 봉화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3
 
먼저 유관순열사 생가지부터 돌아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시골 초가집과 크게 다를 게 없어 향수를 자아냈습니다. 사립문 앞에는 커다란 낙우송 두 그루가 서 있고 사립문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4
 
유관순열사 생가지는 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빈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91년 12월 30일 초가집 본채와 부속사로 복원하였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5
 
ㄱ자 형태의 전통 한옥 건물에는 안방과 건넌방 사이가 대청마루가 있고 독립운동을 의논하는 선각자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6
 
생가 옆에는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있으며 1977년 열사의 가족들에게 생가지를 관리하도록 정부에서 지어준 관리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7
 
유관순열사 생가지에서 매봉산에 이르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산 정상에 있는 봉화탑까지 약 0.8km, 산 반대편에 있는 추모각까지는 1.2km이므로 살살 걸어가면서 유관순열사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차로 유관순열사기념관 주차장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8

유관순열사기념관은 열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3년 4월 1일 개관하였다 합니다. 이곳에는 열사의 수형자 기록표, 호적 등본, 재판기록물 등 관련 전시물과 독립만세 운동을 재현한 디오라마, 재판 과정을 담은 매직비전, 열사의 생애를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하는 등 출생에서 순국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고 있습니다. 관람 시간이 저녁 6시까지인데 우리는 너무 늦게 도착하여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예전에 다녀간 적이 있어서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9
  
충청남도 기념물 제58호인 유관순열사추모각은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영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72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윤여화 화백이 그린 유관순열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10

유관순열사가 순국하자, 열사의 시신은 이화학당에 인도되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일제가 이곳을 군용기지로 사용하려고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을 하면서 열사의 주검은 흔적도 없이 망실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에 그 영혼이라도 편히 잠드시도록 매봉산 중턱에 초혼묘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초혼묘는 6각의 뿔 형태로 각 면에는 열사의 기도문을 비롯한 글들이 적혀 있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11

초혼묘 뒤에는 유관순열사의 모습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12
 
양옆에는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가 사시사철 초혼묘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어 가슴을 따스하게 했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13
 
이곳은 산 정상에 있는 봉화지로 1972년 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유관순열사가 독립만세를 계획하고 의거한 전날 밤, 아우내 장날 다음날인 1919년 4월 1일의 거사를 알리기 위하여 봉화를 올렸던 곳이라고 합니다. 사각의 단을 세우고 횃불을 올렸던 그릇 모양을 올려놓았습니다.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14
 
뒤쪽으로는 1977년에 높이 5.6m의 봉화탑을 세우고 탑 아래에 이은상님이 시를 쓰고 김기승님이 글씨로 봉화탑 찬가를 새겨 놓았습니다.
 
  정의의 상징이 나라의 딸 유관순
  그대 매봉에 올라 높이 들었던 봉화
  여섯 고을 스물넷 산봉우리마다
  내일을 약속하며 같이 타오른 봉화들
  이 길로 가야 자유가 있고
  이 길로 가야 평화가 있고
  오직 이 길만이 사는 길이라고
  애타게 일러준 거룩한 봉화였네
  그대 손에 들렸던 그 정열의 봉화
  민족의 끓는 피로써 기름을 삼았기에
  악마의 풍우 속에서도 꺼질 리 없었고
  오늘은 역사의 제단에 이리도 화사로이
  무궁화 꽃송이처럼 피어오른 봉화라
  영원히 겨레의 가슴 가슴에 타오르리라
  타오르리라  
 
제102주년31절을맞아찾은유관순열사사적지 15

유관순열사 사적지를 돌아보고 나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서 아우내장터에서 순대국밥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밖으로 나왔더니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곳곳에는 병천 아우내를 살리자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102년 전 유관순열사가 앞장서고 3천여 시민들이 뒤따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던 아우내는 순대맛집 거리로 변모했지만, 그분들을 추모하고 살리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대로님의 다른 기사 보기

[대로님의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22775540405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