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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제 최후의 보루였던 논산 노성산성

논산 노성산 애향공원과 노성산성

2021.02.24(수) 07:26:39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논산(論山)에 있는 노성산(魯城山)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노산(爐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해요. 논산이라는 지명이 혹시 노산에서 유래한 게 아닌가 했더니 전혀 아니라 하는군요.
 
논산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부군면을 통폐합하면서 '넓다'라는 의미로 '논뫼', '놀뫼'로 불리던 한 마을의 이름을 비슷한 한자를 빌어서 그냥 논산군이라고 정한 것이라 하는데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황산성과 더불어 백제 최후의 보루 중 하나였던 논산의 노성산성에 올라 백제인들의 향기를 느껴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제최후의보루였던논산노성산성 1
 
노성산성 중턱 넓은 터에 주차장에 3개나 있고 주차장 주변에 꽤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논산에 가볼만한 곳이 참 많은데 그중에서 논산10경 중 8경으로 소개되고 있을 만큼 노성산성은 꽤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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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교동흔들다리를 건너 애향공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백제최후의보루였던논산노성산성 3
 
노성애향탑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충효예를 생활 속에 실천해 온 선조들의 거룩한 정신을 이어받아 화합 단결함으로써 노성지역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노성애향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기단 위에는 노성의 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노성은 백제시대에 열야산현이었는데, 당나라가 점령하여 노산주로 고쳤다고 해요. 신라 경덕왕 때는 이산으로, 고려 현종 때인 1018년에는 공주에 예속되었다 합니다. 조선 태종 때 이성으로 하였다가, 정조 초에 노성이 되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논산군 노성면이 되었다 하니 이름의 변천사가 바로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복잡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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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공원에는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각종 휴게시설과 무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눈을 의심하게 하는 게 있었으니, 휘트니스센터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운동기구들이 야외 공원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운동시설들이 문을 닫아서 답답해하던 제 아들은 이곳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열심히 운동하였습니다.
 
제 아들을 재촉해서 노성산을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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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 등산로는 노성산애향공원에서 바로 시작됩니다. 부드러운 흙길이 산속으로 이어져 걷기 아주 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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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 정상 부근에는 노성산성이 있습니다. 논산 노성산성은 해발 348m의 노성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백제시대 테뫼식 산성(산봉우리에 테를 두른 듯이 쌓은 산성)입니다. 노성산성은 산의 정상을 삼태기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올라가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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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입구에서 조금 더 진입하면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납니다. 산 타는 재미를 느끼고 싶으시면 오른쪽 계단을 따라오르면 되고 편안한 길을 선택하려면 임도로 조성된 넓은 길을 선택하면 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1.7km 정도의 거리이나 시간 차이는 좀 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편안한 왼쪽 넓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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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에서 만난 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작년에 이 산에서 누군가의 방화에 의해 산불이 났다고 합니다. 다행히 일찍 불을 꺼서 피해는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무 밑동의 껍질이 새까맣게 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새로 소방도로를 조성 중에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다소 좁은 산길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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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평탄했던 등산로는 급경사를 이루며 산정상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산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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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성에는 남문지, 서문지, 동문지 등 세 개의 문이 있습니다. 이곳은 남문지 부근인 것 같은데 돌을 반듯하게 네모로 깎아서 복원해 놓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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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지나 누군가 깎아서 세워 놓은 듯 보이는 바위틈으로 들어섰습니다. 바위에는 삼신암, 칠성암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부처님상도 그려 놓았군요. 아마도 이곳에 절이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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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안 전망 좋은 곳에 새로 지은 듯한 사찰 비슷한 시설이 들어서 있군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현판에 '금강대도노성본원'이라고 되어 있군요. 금강대도는 조선말인 1874년에 이승여가 창시한 유교와 불교와 선교를 융합하는 종교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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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48의 노성산 정상은 사방이 확 트여서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동으로는 계룡산, 남으로는 논산, 북으로는 공주, 서쪽으로 부여가 한눈에 바라다보입니다. 우뚝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이 계룡산의 힘찬 기상을 느끼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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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성은 연산의 황산성과 함께 백제와 신라가 대치했던 최후의 방어선입니다. 산꼭대기에는 봉수대와 성을 지키는 시설인 장대의 터가 있으며, 이외에 창고터·건물터, 문터와 우물터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성안에서 기와와 토기 등의 유물 파편은 백제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이 꾸준히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논산 노성산성은 사적 제393호로 지정된 둘레 약 950m의 정상식 산성입니다. 성벽은 남쪽에서 6.8m나 되고 서쪽에서도 4.2m나 되는 높은 산성입니다 .성벽은 표면이 장방형으로 다듬어진 할석을 수평쌓기를 하고, 기단의 아래에서는 계단식으로 점차 안쪽으로 수렴되도록 축조되어 매우 견고한 성이라고 합니다.
 
백제인들이 이 높은 산 정상에 돌로 높은 성을 쌓고 적과 대치하였지만 끝내 나라를 회복하지 못하고 목숨을 바쳤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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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군데군데 허물어져서 성벽을 이루었던 돌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복원해서 당시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어지럽게 노출되어 있는 것도 역사의 흐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논산의 노성산 아래에는 운동시설이 잘 조성된 애향공원이 있고 정상에 오르는 길이 비교적 평탄하여도 어린 자녀와 함께 올라도 그리 어렵지 않은 산입니다. 특히 정상 부근에 역사적인 의미가 큰 노성산성이 있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고 조상들의 슬기와 나라 수호의 마음을 일깨우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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