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사라진 제일은행 공주지점 시계탑은 어데 있지?

2021.01.16(토) 17:22:25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997년, 금융 기관들은 외국자본이 국내에서 빠지고 기업들이 문을 닫으면서 난관에 부닥친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자금을 요청해야 했고, IMF 구제금융기관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 중 제일은행으로부터는 15조 원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제일은행 공주지점에도 크다면 크다 할 수 있는 변화의 바람이 인다.
 
▲ 공주문화323호에 실린 신용희 금강포럼 대표의 '문명과 자연'▲공주문화323호에 실린 제일은행 공주지점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사진 자료
 
금강포럼 '신용희' 대표는 공주문화원에서 발행한『공주문화』323호에 1997년에 촬영한 제일은행 공주지점 건물 사진을 게재했다. 공주시 중동에 소재했던 이 건물은 1920년대(?)에 건축되었으며, 충남 최초의 은행으로 소개되어 있다.
 
식산은행 공주지점 터를 알리는 안내석▲식산은행 공주지점터를 알리는 안내석이 옛 제일은행 공주지점터에 남아 있다
 
아울러 '공산지(公山誌)'의 기록을 옮겨 놓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이곳에서 1905년(광무 9년)에 '한호농공은행(韓湖農工銀行)'이라는 금융기관으로 발족하여 1906년 농공은행 공주지점으로 개편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또한 '제일은행사(第一銀行史)'에 따르면 이후 1926년 '조선저축은행'으로, 1952년에는 '제일은행 공주지점'으로 개칭되었다고 전한다.
 
1997년에 신용희 대표가 찍은 사진 속 충남 최초의 은행 건물은 1998년에 철거되었고, 현재는 일제강점기 경제 식민통치기관인 '식산은행'이 있었던 자리를 알리는 안내석만 남아 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조선은행 군산지점
 
조선은행 군산지점 천장 환풍구
사라진제일은행공주지점시계탑은어데있지 1▲조선은행 군산지점 천장 환풍구와 외벽 타일까지 보관·전시중이다
 
군산은 1899년 일본에 의해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개항을 한 도시다. 이곳에서 1909년 11월 24일 경성에 있던 조선은행 본점과 함께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개업을 한다. 처음에는 기존의 제일은행 군산출장소를 인수하여 출발했으며, 1916년 지점으로 승격된 후 1920년부터 새 건물과 사택을 지어 1922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당시 지은 건물이 적산가옥 등과 함께 남아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기억하는 교육자료로 활용 중이다. 
 
이런 점에서 근대문화재인 제일은행 공주지점 건물 철거를 두고 아쉬워하는 공주시민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1990년 제일은행 공주지점
▲1990년에 찍은 제일은행 공주지점 전경(출처 공주학아카이브)
 
1997년 제일은행 공주지점 전경
▲1997년에 찍은 제일은행 공주지점 전경(출처 공주문화323호)
 
1998년 제일은행 공주지점 건물을 철거하면서 이렇다 할 기록이나 자료를 변변히 남기지 못한 듯하다. 다행히 제일은행 공주지점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 공주회 회원인 '마쯔바야시 토시오(松林 敏夫)'씨가 공주학연구원에 기증하여 공주학 아카이브에 등록된 사진 자료가 몇 점 있었다. 마쯔바야시 토시오씨가 1990년에 공주 방문시 찍은 사진과 금강포럼 신용희 대표가 1997년에 찍은 사진을 비교하면 한 가지 달라진 점이 보인다.
 
작년 가을에 공주 토박이 한 분이 1998년 제일은행 공주지점이 철거되기 직전에 잠기지 않은 이 건물에 들락거려서 지금도 기억한다며 제일은행 공주지점 건물 외부에 크지는 않지만, 시계탑이 있었다고 제보해 주신 일이 있다. 그 시계탑은 건물이 철거될 즈음에 공주교육대학교에서 기증받아 교정으로 옮겨 놓았다는 정보까지 주셨다. 그리고 1990년 사진에서 찾을 수 없었던 시계탑을 신용희 대표가 글에 소개한 사진 속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공주교육대학교 정문 전경
▲공주교육대학교 정문 
 
공주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 본관 앞에 있던 시계탑
▲공주교육대학교 운동장 가에는 공주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 본관 앞에 세워져 있던 시계탑을 옮겨와 시계 대신 해바라기 스티커를 붙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공주교육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시계탑이 있던 자리
▲공주교육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시계탑이 있던 자리에는 가로등이 서 있다
 
며칠 뒤 제보자의 말을 믿고 공주교육대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어디에도 시계탑은 보이지 않았다. 시계탑처럼 보이는 것이라고는 공주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 본관 앞에 세워졌던 시계탑의 시계가 자주 고장나 2018년경 시계를 없애고 해바라기 스티커를 붙여 세워 놓은 조형물만 보일 뿐이었다.
 
포털사이트 검색을 수도 없이 한 끝에 (두피아) 두산백과 공주교육대학교 교정 이미지에서 제일은행 공주지점 건물 밖에 세워졌던 시계탑을 발견했다. 공주교육대학교 입지관 건물 오른쪽 화단에 사도헌장비와 함께 서 있다. 그러나 현장을 다시 찾았더니, 시계탑은 없었다. 교정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물어도 행방은 '모른다'라는 대답뿐이었다.
 
앞으로 자리를 옮긴 사도헌장비
▲제일은행 공주지점 시계탑과 함께 서 있던 (1996년 졸업생들이 기증한) 사도헌장비는 공주교육대학교 입지관 앞 화단에 세워져 있다
 
제일은행 공주지점 시계탑과 함께 세워졌던 사도헌장을 적은 비는 입지관 앞 화단에서 발견했다. 

이후 공주교육대학교 졸업생과 퇴직한 교수님께도 시계탑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기억하는 이가 없다. 어찌 생각하면 별반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제일은행 공주지점 건물이 남긴 마지막 유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시계탑의 행방을 계속 묻고 다닌다. 1998~2018년에 공주교육대학교에 재직·재학한 분들에게서 제보를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발품도 계속 팔아야 할 것 같다.
 
공주시 청년센터 부지
▲제일은행 공주지점 건물이 있던 자리는 공주시청년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제보를 받고 꽤 시간을 들였음에도 제일은행 공주지점의 마지막 흔적을 찾고자 뛰어다닌 성과는 얻지 못했다. 하지만, '기억은 역사로 남고,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다'라고 했으니, 낙담은 아직 이르지 않겠는가.
 
군산의 조선은행이나 강경의 한일은행처럼 보존된 근대문화유산은 일제강점기에 국내 자본수탈의 창구로 쓰였던 아픈 역사를 뒤돌아보게 한다. 서울이나 인천 등지에서는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한 근대문화유산을 '미래유산'으로 지정·관리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데, 그 까닭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사진과 기록, 증언 등이 모인다면 군산 조선은행 내 전시관의 예처럼 없어진 건축물은 미니어처로라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켜내지 못한 유산을 다시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갑절의 노력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리라.
 

엥선생 깡언니님의 다른 기사 보기

[엥선생 깡언니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