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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잃어버린 척화비, 그 빈 자리를 찾아서

아산 신창현 역사공원

2020.12.18(금) 07:31:29 | 안개비 (이메일주소:hae041@naver.com
               	hae04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았던 것은 쉽게 이야기하지만, 좋지 않았던 것을 표현하기에는 매우 인색합니다. 우선 제가 그렇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단호히 이야기합니다.
 
'역사(歷史)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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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현 역사공원
 
역사(歷史)를 사전에서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고 뜻풀이를 하고 있네요. 그렇다면 좋았던 것, 또는 그러지 못했던 것 모두가 역사이므로 함께 남겨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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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현(고려 초)
 
고려시대 초기에 신창현(新昌縣)이라 불리던 작은 마을의 역사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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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
 
아산시 신창면 신창초등학교 입구 옆에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가끔 지나던 곳인데, 어느 날 보니 무엇인가 사라진 듯하네요.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비석 하나가 없어졌더군요. 
 
"그래, 척화비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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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현 역사공원, 신창지역 비석군
 
그래서 찾아간 곳이 신창지역 비석들을 한데 모아 놓은 '신창현 역사공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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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신창현 역사공원의 단순한 안내판입니다. '너무 단순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공원이네요. 하지만, 지역에 흩어져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한데 모아 마을 내 작은 공원으로 만든 분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좀 인위적이긴 하지만 일괄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행정이라 생각되네요. 이런…, 오늘의 느낌을 벌써 남겨 버렸네요! 그럼, 신창현 역사공원을 둘러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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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척화비가 있던 빈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자 하나와 비석들이 꽤 많이 보이네요. 이렇게 마주한 신창현 역사공원의 첫 모습은 썰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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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지역 비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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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의 종류로는 관리들의 공덕을 기린 선정비와 영세불망비가 주를 이루는데, 그 숫자로 보아도 이 지역은 꽤 오랜 역사를 지녔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선, 제가 찾으려 했던 비석이 가장 좌측에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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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 척화비(좌,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36호)
 
척화비(斥和碑)란,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겪은 후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이며, 신창 지역에도 세웠기에 신창 척화비라 합니다. 척화비의 긍정적 측면이라면 외세에 대항하여 국권을 지키려는 자주적 노력의 표현이라 할 수 있으나, 근대화를 늦추어 외세 침탈의 빌미가 되었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는 현실이기에 척화비는 우리 아픈 역사의 한 모습을 나타내는 중요한 유물일 것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신창초등학교에 보관했다가, 1987년 신창초등학교 입구 옆으로 옮겨 놓았고, 2019년 이곳 신창현 역사공원에 자리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역사공원이 있는 이곳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집단촌이 되었다 싶을 정도로 여러 국적의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되어 있답니다, 150년 전 그토록 외세를 척결하려 했던 흥선대원군의 굳은 결의와는 정반대의 현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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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원의 비석군 및 신창현 역사공원에 대한 설명을 대신하는 안내판을 함께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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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창현이라는 마을 이름의 역사를 들여다 봅니다. 이 지역 자료의 출현은 청동기시대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백제)에 굴직현(屈直縣)에 속하였고, 통일신라 시대에 기량현, 고려시대에 신창현, 천안부에 속했다가 당성이라 불렸고, 조선시대에 온창이라 불리다가 다시 신창현이 되었으며, 후에 학성면으로, 그리고 현재의 신창면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이 정도면 오랜 역사를 간직한 중요한 지역이라 할 만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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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북정
 
파란 하늘을 예쁘게 이고 앉은 정자 하나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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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북정(拱北亭) 이라는 정자입니다. 공북정이란, 북쪽의 궁궐 문을 바라보며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남긴 것이라 하는데, 이 정자는 지방 수령이 휴식 및 공부를 하는 곳이었고, 관내를 바라보며 목민관의 자세를 바로잡았던 곳이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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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북정 안에서 바라 본 풍경
 
그 시절 바라 본 북쪽은 이런 풍경이었을까요? 물론 완전히 달랐겠지만, 임금을 향한 마음과 백성을 향한 마음이 조금은 이해될 듯하네요. 지금의 목민관들도 이런 마음을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빈 자리의 잃어버린 척화비를 찾다가 알게 된 신창현 역사공원! 지금은 이렇게 작은 공원으로 지난날의 역사를 대변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오래도록 후손들에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신창현 역사공원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35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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