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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오일장이 섰던 '논티마을'

'성시'를 이루던 논티마을을 찾아서

2020.10.11(일) 00:34:10 | 원공 (이메일주소:manin@dreamwiz.com
               	manin@dreamwiz.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오일장이섰던39논티마을39 1▲색이 다른 두 그루의 정자나무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10월 중순, 멀리 황금들녘 한편에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시선을 끈다. 멀리서 보아도 몸매가 예사롭지 않다. 가만히 보니 마을 입구에 아름드리 나무 두 그루가 서서 정자를 보듬고 있다. 정자나무에 이끌려 마을로 들어가 보았다. 마을 뒤로는 언덕 같은 나즈막한 산이 길게 누워 있고, 마을 앞으로는 금빛 논티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오일장이섰던39논티마을39 2▲논티고개서 내려다본 마을풍경
 
오일장이섰던39논티마을39 3▲마을 내 넓은 공터
  
이 마을은 마을 뒷산 논티고개 아래에 있다 하여 '논티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1931년부터 시장이 개장되어 80년대 중반까지 성시를 이루던 곳이다. 지금은 교통의 발달로 부여 등으로 상권을 빼앗기고 어렴풋한 흔적만 남아 있다. 지금도 정미소와 농약사는 성업 중이다. 70년대 오일장이 열리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댔다고 한다. 공터에서는 약장수가 온갖 쇼를 보여주며 약을 팔았고, 어물전에서는 천막을 쳐놓고 각종 생선도 팔고 우동과 짜장면까지 팔았다 한다. 또 한편에는 가설극장을 설치해 놓고 며칠씩 머물며 여러 장르의 영화도 상영했단다.

오일장이섰던39논티마을39 4▲마을로 들어가는 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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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담장에 지은 이층집
 
논티마을은 여느 마을과 달리 마을 안이 넓었다. 큰 시장이 설 만큼 동네 안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를 중심으로 집들이 들어서 있고, 마을에서 들로 나가는 곳에 정자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수령이 300년에 가까운 노거수다. 그러나 두 그루가 수종이 달랐다. 하나는 느티나무였고, 다른 하나는 버드나무였다. 큰 시장이 열리던 곳의 나무답게 몸매가 남다르다. 느티나무는 수형의 균형이 잘 잡힌 몸매로 풍채가 대단하고 버드나무는 오랜 세월 단련된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한다. 백 명이 넘게 찾아와도 충분히 쉴 만큼 당당한 풍채들이다.
 
오일장이섰던39논티마을39 6▲정미소가 있는 골목
 
오일장이섰던39논티마을39 7▲농약사가 있는 골목
  
큰 시장이 열리던 이곳에 정자나무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카페도 없던 시절, 숨이 턱턱 막히는 더운 여름 장날엔 지인들과 정담도 오래 나누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시장이 설 줄 알고 누군가 나무를 심어 놓았을까, 아니면 큰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장이 섰던 것일까.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지리적 위치를 보고 사람들이 지혜롭게 편리한 곳에 시장을 열었을 것이다.
 
오일장이섰던39논티마을39 8
 
오일장이섰던39논티마을39 9
 
마을은 농협을 비롯하여 음식점도 있고 주변에 장례식장이 있을 만큼 규모가 있다. 예전에는 아마도 100호가 넘는 큰 마을이지 않았나 싶다. 자연부락으로는 논티마을·다부내마을·동편마을이 있고, 마을을 양쪽으로 가르며 지방도가 지난다. 주로 벼농사를 짓고 야산에는 밤나무를 키우고 있다. 뒷산에는 백제시대 것으로 보여지는 테뫼식 산성도 있다. 논티마을의 집과 골목은 전형적인 시골풍경이나 도로변에는 도회지 느낌도 물씬 배어 있다. 마을 공터에 서면 지금도 엿장수·생선장수·뻥튀기 아저씨들의 걸죽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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