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다는 연락을 받고 멀리 경북까지 다녀오면서 몇 곳을 둘러봤습니다. 이맘때면 개심사에 청벚꽃과 왕벚꽃이 만개했을 것 같아 4월 29일 들렀는데 예상했던 바처럼 보기 좋게 만개하여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개심사의 일주문으로 들어와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오면 세심동, 개심사 입구란 붉은 문구를 품은 두 개의 자연석 사이로 개심사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습니다. 세속의 무게를 내려 놓고 마음을 씻으며 마음을 여는 개심사의 솔숲을 올라봅니다. 나뭇가지엔 연둣빛 잎새가 솟아 햇살을 받고 있으며 봄바람에 나풀거리고 숲에선 청아한 새소리가 발걸음 가볍게 합니다.
계곡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솔숲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마음을 비워내며 걸으니 풀 한 포기도 돌 하나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쓰임의 가치는 자연과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지요. 사찰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각기 다른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데, 개심사를 찾는 분들과의 인연도 아름다움이라 생각합니다.
개심사 연못을 지나 노목 사이로 범종각을 보고 계단을 올라서 왕벚꽃이 핀 해탈문 앞에 걸음을 멈춥니다. 연분홍빛 왕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답니다. 올봄도 어김없이 다 피워내어 가지가 휘어지도록 몽글몽글 피어 감동을 선사합니다.
깨달음 얻는 해탈문을 들어서면 심검당과 대웅보전이 있고, 우측으로 가면 왕벚꽃이 마치 수양벚꽃과 같이 땅에 닿을 듯 피어 있습니다. 혹여 꽃 무게로 나무가 찢어질까 버팀목을 고정시켜 놓고 있네요. 작년보다도 더 풍성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곱고 탐스러운 꽃송이가 예뻐서 가까이 다가가 손길로 어루만지는 여인, 금방이라도 꽃의 부드러운 연가를 부를 듯 미소를 머금은 여인, 어느 꽃송이를 가슴에 각인시키려 빛나는 눈동자, 꽃보다 아름다운 표정들이 청명한 봄날의 하모니가 잔잔한 울림으로 전해 옵니다.
이렇게 봄이면 왕벚꽃과 청벚꽃이 피어 여심을 사로잡는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651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충정왕 때 중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작고 단아한 절집으로 대웅전은 보물 제143호로 지정되었으며 심검당의 자유로움이 배인 자연 기둥에서 정겨움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명부전 앞 청벚꽃을 만나봅니다. 청벚꽃 나무는 오직 개심사에만 있다고 하지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왕벚꽃과는 보기에도 꽃빛이 확연히 다르게 보입니다. 신기한 것은 다른 곳에서는 살지 못하고 오롯이 이곳에서만 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개심사에는 세 그루의 청벚꽃 나무가 꽃을 피워 '세상에 이런 일(!)'이 할 정도로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사진 동우회 진사님들이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일제히 청벚꽃을 향하여 샷을 날리는 열정이 장관입니다. 푸른빛이 감돌아 청량감을 주는 청벚꽃나무는 이곳에서만 살고 있어 더 귀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4월 말경에서 5월 초까지 꽃대궐을 이루는 개심사의 청벚꽃과 왕벚꽃은 전국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모으는 매력이 충분합니다. 청벚꽃은 왕벚꽃처럼 꽃송이가 탐스럽지는 않지만 푸르스름한 꽃빛이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꽃을 감상하기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려고 꽃그늘 속에서 서성이며 속삭이듯 재잘대는 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흠뻑 취했습니다.
발길 돌리기가 아쉬워 요사채 앞 왕벚꽃이 핀 곳으로 돌아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꽃송이를 새로운 듯 봅니다. 왕벚꽃은 겹벚꽃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반 벚꽃이 지고 나면 피기 시작하지요. 꽃잎이 여러 겹이라서 소담스러워 보이고 마음마저 풍성해지는 듯합니다.
개심사의 전경을 보기 위해 마당 옆 산길로 올라가니 연둣빛 녹음 속에 왕벚꽃, 청벚꽃과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늘 그렇지만 아담하고 아름다운 절집으로 좋아하는 곳이라서 이번에는 꽃을 보기 위에 찾은 개심사지만 한적하게 돌아볼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느림으로 걸어 내려오니 다람쥐 한 마리가 풀숲에 있어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러봤는데,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습니다. 5월 5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번 주 연휴를 맞이하여 좀 느슨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 고비를 잘 넘겨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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