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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이응노 사생과 소묘전 ‘해방공간에서 1950년대’

홍성 이응노의 집… 오는 5월까지 120점 공개

2020.02.02(일) 17:00:54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고암 이응노의 집 전경.
▲고암 이응노의 집 전경 1
 
동양화의 전통성과 현대성을 아우른 독창적 창작세계를 구축해 한국미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와 평가를 받는 고암 이응노(1904~1989). 그의 고향 충남 홍성에서 운영 중인 ‘이응노의 집[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에서는 이응노의 사생과 소묘 ‘해방공간에서 1950년대’가 오는 5월까지 중앙홀 및 2·3·4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고암 이응노화백의 사생과 소묘 전시장 입구.
▲고암 이응노화백의 사생과 소묘 전시장 입구
 
작품전은 이응노 화백이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서울과 홍성을 비롯해 전국을 기행하며 사생한 인물, 풍속, 풍경, 정물, 추상을 위한 습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정신과 예술세계를 확립하기 위한 줄기찬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고암 이응노의 작품 연대기.
▲고암 이응노의 작품 연대기
  
사생과 소묘는 모두 120여 점에 달하고 고암의 ‘사생첩’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당시 활동했던 여러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은 화첩집도 공개하고 있습니다. 100점에 가까운 전시작이 처음 관람객에게 공개하는 이응노의 집 소장품입니다.
 
전시작은 이응노가 열아홉(1923년)에 서울로 상경해서 도쿄(1936년)로, 다시 서울로 이동한 삶의 여정과 예술기록을 작품과 유품 자료가 연대기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연필소묘, 수묵채색, 콩테 등 그 시대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서울과 홍성, 피난시절의 풍경을 비롯해 변화한 도심이나 고요한 사찰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와 새, 꽃, 물고기 등 생활 주변을 담아냅니다.
 
고암 이응노의 집 중앙홀 전시장.
▲고암 이응노의 집 중앙홀 전시장에 공개된 그의 대표 사생
 
고암 이응노의 대나무 수묵화. 이응노는 대나무 그림을 자그려 청사라는 호를 얻기도 했다.
▲고암 이응노의 대나무 수묵화, 그는 1924년 조선미전에 '청죽(晴竹)'으로 입선해 미술계에 등단했다
 
이응노 전시품
▲이응노 전시품 1
 
이응노 전시품 2
▲이응노 전시품 2

이응노 전시품 3
▲이응노 전시품 3

이응노 전시품 4
▲이응노 전시품 4
  
이응노 전시품 5
▲이응노 전시품 5
 
이응노전시 6
▲이응노 전시품 6
 
이응노 7
▲이응노 전시품 7
 
이응노 8
▲이응노 전시품 8
 
이응노 9
▲이응노 전시품 9
  
이응노의 집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2011년 개관했습니다. 조성룡(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 건축가의 작품으로 201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석양에 그늘진 이응노의 집 전경.
▲석양에 그늘진 이응노의 집 전경
 
전시공간은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긴 홀에 서로 다른 4개의 전시실로 이어집니다. 전시실 사이사이 열린 틈에는 햇빛과 풍경이 드나들며 종일 빛을 드리웁니다. 기념관은 배경이 황토로 부드럽지만 길을 사이에 두고 안쪽 홀에서는 사뭇 긴장감이 느껴져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응노의 집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이응노의 집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이에 대해 조성룡 건축가는 “(기념관으로 난)이 길은 예술로 난 길이기 이전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근현대사의 질곡 위에 난 길”이라며 “그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굴절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응노의 집 전경.
▲이응노의 집 전경

그의 설명처럼 이응노의 집은 쌍바위골 시골길을 따라 은근히 숲 자락에 가려진 채 농촌풍경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오래된 지도에서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연밭과 밭두렁을 거닐 수도 있습니다. 대숲과 채마밭도 원래 그렇게 있었던 듯 고향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겨울의 날씨지만 오히려 푸근해 보입니다.
 
이응노 집 연 밭. 여름부터 가을까지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이응노 집 연밭, 여름부터 가을까지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이응노 생가 주변의 대나무 숲 길.
▲이응노 생가 주변의 대나무숲길
 
이응노 화백 생가 1.
▲이응노 화백 생가 1
 
이응노의 집에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올해로 4기생 3명을 1월31일까지 모집 중입니다. 입주 예술가에게는 10개월 간 작업공간과 거주지가 무상으로 제공되고 창작금과 프로젝트 진행비, 제세공과금 등이 지급됩니다. 개인전도 열도록 지원됩니다.
 
이응노의 집 한옥 창작공간.
▲이응노의 집 한옥 창작공간
 
이응노의 집 창작공간
▲이응노의 집 창작공간 2
 
이응노 화백은 우리 근현대사의 굴절과 비극을 삶 속에서 고스란히 겪었습니다. 1967년 동베를린사건으로 강제 소환돼 옥고를 치르다 1969년 사면되었습니다. 파리로 돌아간 그는 1970년대에 서예가 보여주는 조형의 기본을 현대화한 문자추상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1977년 또 다른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1989년 작고 전까지 고국에 입국조차 금지되었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그의 대표작 ‘인간군상’이 선보였습니다. 익명의 군중이 서로 어울려 춤추는 듯한 풍경을 통해 그는 사람들 사이 평화와 어울림, 하나의 세상을 갈망했다고 합니다. 유난히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에서 식민지, 남북전쟁과 분단, 정치적 혼란기를 겪은 그가 평생의 예술관과 고뇌를 함축한 조형적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홍성에서 태어나 20세기를 치열하게 살고 간 한 예술가이자 인간 삶의 궤적을 담은 이응노의 사생과 소묘전 ‘해방공간에서 1950년대’, 그의 고향 마을에서 해방공간 그가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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