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공주 역사 찾기와 자료수집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2015년 공주학연구원 설립부터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저장하는 공주학아카이브 구축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고순영 연구원은 일제강점기 때 작은 사진엽서를 보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정자 사진을 보게 된다. 공주의 웬만한 유적은 다 꿰고 있는 고순영 연구원은 엽서 속 누정이 ‘취원루’일 가능성을 갖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 취원루 위치에 대해 발표하는 고순영 연구원
8월 19일 오후 3시 공주학연구원 고마나루실에서 개최된 제56회 공주학광장에서 ‘취원루를 아시나요?’ 주제로 그동안 취원루 관련 자료를 찾고 연구한 것을 발표했다.▲ 사진 1. 포정사 앞에서 촬영한 관아대로
▲ 사진 2. 2003년 9월에 작성한 윤여헌 사학자의 공주시내 지도
고 연구원은 먼저 일제강점기 때의 흑백 사진(사진 1)을 통해 “현재 사대부고 정문인 포정사 앞에서 찍은 관아대로와 중앙공원의 누정이 취원루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2003년 9월에 작성된 윤여헌 향토사학자의 공주 시내 지도(사진 2)에 구 의료원 옆 ‘취원루’ 표시와 옛사진(사진 3)의 누정(동그라미 표시)을 확인하였다. 특히 사진 3의 사진 오른쪽 위 나무는 현재 영명학교 ‘역사전망대’의 나무가 확실시되며 영명학교 뒤 선교사 건물 인근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 사진 3. 선교사건물 부근에서 촬영한 취원루 원경
이어 취원루가 나오는 첫 관찬서 기록을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중종 25년」공주목 누정조 첫머리에 ‘취원루(聚遠樓) - 객관(客館) 동쪽에 있으니 옛날의 관정정(觀政亭)이다. 정자가 연못 가운데 있었는데 목사(牧使)권체(權體)가 정자를 헐고 누(樓)로 만든 것을 뒤에 목사 홍석(洪錫)이 동헌(東軒) 동쪽에 옮겨 세웠다’고 적혀 있다.고 연구원은 또 “취원루 기록은 공산지(1859년) 누정조에 수록됐다”며 “취원루는 연정(淵亭 1412년 태종 12)에 이어 관정정(觀政亭 1415년 태종 15)으로 다시 취원루(聚遠樓 1474년 성종 5)로 변천했다”고 설명했다.
그 외 여러 기록을 소개한 고 연구원은 “취원루는 기둥 10개에 정면 2칸, 측면 3칸의 건물로 현재 중앙공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사진 4) 중앙공원은 초혼사(청국신사)와 충혼비(일제시대), 4.19학생혁명기념탑에 이어 최근 유관순 열사상이 건립되었다.
▲ 사진 4. 관아대로와 중앙공원의 취원루
발표를 들은 윤용혁 교수는 “취원루의 위치가 현 중앙공원 자리가 맞는 것 같다”면서 고순영 연구원의 발표에 힘을 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