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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천 공립박물관 이하복 고택 전시관

2019.07.06(토) 00:11:56 | 푸른마음 (이메일주소:gumle8234@naver.com
               	gumle823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서천공립박물관이하복고택전시관 1

공립박물관 서천 이하복 고택 전시관은 이하복 고택 옆에 위치하고 있어 고택을 둘러보고 바로 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국가 민속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된 이하복 고택은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전통 농가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데요, 이하복 선생의 업적과 관련 자료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건립된 서천군 내 첫 공립박물관입니다.
 
서천공립박물관이하복고택전시관 2

이하복 고택 전시관은 청화백자 모란문호(20세기 초) 태극기(1940~1950) 놋수로(20세기 중) 등 유물 총 1,476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희귀본으로 알려진 목은 연보(조선시대)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년 1~2회 정기적으로 특별 전시 및 테마 전시를 역사, 문화시설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서천공립박물관이하복고택전시관 3
 
서천면 기산면에서 신산리에서 태어난 이하복(1911~1987) 선생은 본관은 한산, 호는 청암으로 고려 말 문인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의 후손입니다. 평생 청빈한 선비 정신으로 사재를 털어 지역 인재 양성에 힘쓴 청암 선생은 1944년 일제의 학병입대 권유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동강학원과 동강중학교를 설립해 지역 교육 환경의 향상에 힘썼습니다.
 
서천공립박물관이하복고택전시관 4

'왔다. 사랑했다. 그리고 갔다.'
청암 이하복 선생의 묘비명입니다. 오고 가는 것이 누구나 겪는 삶의 형식이라면 '사랑'은 이하복 선생이 살아온 삶의 내용입니다. 선생이 평생 사랑한 것은 가족과 나라, 교육과 전통이었습니다. 서천 이하복 고택은 그 사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생생한 현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서천공립박물관이하복고택전시관 5
 
서천공립박물관이하복고택전시관 6

여인의 고단한 삶이 밴 안방 이야기입니다. 이하복 고택의 안방 살림을 도맡은 주인공은 부인인 황희근 여사(1910~1976)이지요. 이하복 선생은 한산보통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15세에 한 살 위인 황희근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대가족의 장손 며느리로 삶은 고단했지요. 남편은 학업으로 경성과 일본을 떠돌았고 시조부와 시부모를 모시면서 10남매의 아이들을 길러내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효부이자 순종하는 아내, 자상한 어머니로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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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서천 지방의 큰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랑방의 모습은 소박합니다. 4대에 걸쳐 내려온 423종의 물건과 1,043점의 생활공예품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는데 놀라운 것은 이하복 선생의 일기 등에 구입 경로와 쓰임새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생활문화사적 의미가 큰 것은 물 론이고 몸에 밴 검소함을 실천해온 선생의 품성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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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구와 연장류로 가득한 광채 이야기입니다. 이하복 고택의 세간은 서천 지역 인근에서 생산된 것을 구입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특히 대장간 풀무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간단한 연장은 직접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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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과 침과 피와 눈물로 짜는 한산모시는 서천군 한산 지역에서 만드는 모시로 이 지역은 여름 평균 기온이 높으며 해풍으로 인해 습하고 토양이 비옥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서 모시가 잘 자라고 품질도 우수합니다. 한산 모시 짜기는 딸이나 며느리에게 전수하는 식으로 전통을 이어 왔지요. 이웃과 함께 일한다는 점에서 우리만의 독특 공동체문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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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부엌의 물건입니다. 이하복 고택의 부엌세간에서 가장 많은 것은 식기류라고 합니다. 1900~1960년대에 만들어진 236점의 백자 그릇에서 일본산 백자도 십수 점이 섞여 있습니다. 그중에 놋그릇은 1940년대 일제에 무기 재료로 공출을 당하여 상대적으로 적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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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복 선생 자서전 중의 글입니다. '일장기만 보고 자라왔던 내가 태극기를 처음 본 것은 서당 친구인 노승명이 만세를 부르며 들고 다니던 그 엉성하게 그려진 태극기였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국기라는 것 지금은 잃어버린 조국의 상징이라는 것, 새 장터와 만세와 주재소 습격이 나라를 찾기 위한 거대한 운동의 표출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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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 용품과 전통놀이 기구입니다. 옆 혼례용품 가마 사인교가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 가마는 1910년 무렵에 부친 이용구의 혼례식에 썼던 것으로 1920년대 중반 이후 이하복 선생은 물론 은복을 비롯한 동생들의 혼례에도 계속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혼서지, 활옷과 족두리, 신랑이 입었던 관복과 사모관대 등이 원형에 가깝고 주사위, 장기판, 시조 카드, 얼레 등 전통놀이도 환전한 형태로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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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복 선생은 비록 비좁은 집에서 검소하게 살면서도 자녀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익히도록 배려하였는데 이하복 선생도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그 낡은 가야금 두 틀이 남아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음악을 들려 달라고 하여 사랑채에는 축음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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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D 가상현실 체험 공간입니다. 서천의 전통역사마을을 갈 수 있는 체험인데요, 서천 이하복 고택-문헌서원-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를 하나로 엮은 서천 전통역사마을 탐방 코스로 HMD 가상현실 영상으로 실감나게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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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책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글이 가슴에 와 닿네요. 이하복 고택에 소장된 책은 모두 3.625종 7,835권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고택에 소장된 총 8,878점의 유물 중 공예품 1,043점을 뺀 나머지 88%가 모두 책인 셈입니다. 그에게 나라와 교육은 한몸이었고 책과 전통은 교육을 끌고 가는 두 개의 바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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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지교 코너입니다. 검소한 생활 속에서도 공부에 매진하며 틈틈이 음악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대대로 내려온 이하복 가정의 전통이었는데요, 선생은 동강학원을 세운 뒤에도 학교에서 간혹 가야금을 탄주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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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축음기를 통하여 들었던 음악들입니다. 이에리수, 윤심덕, 이난영 등이 보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자주 틀어 달라고 졸랐다고 하지요. 처음 티브이가 나왔을 때처럼 그 당시 작은 기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무척이나 신기했을 거예요. 서천 여행 공립박물관 이하복고택 전시관 방문기였습니다.  

이하복 고택 전시관 안내
-주소: 충남 서천군 기산면 신막로57번길 32-3
-시간: 매일 10:00~18:00
-관람료: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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