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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대백제 중흥을 꿈꾼 사마, 후손의 가슴에 별을 쏘다

공주시, 1496주기 무령대왕 추모대제 봉행

2019.06.11(화) 05:20:14 | 희망굴뚝 ‘友樂’ (이메일주소:coke4856@hanmail.net
               	coke4856@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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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일), 오전 10시부터 공주 숭덕전에서 백제 25대 왕인 무령대왕(재위 501~523, 이름은 사마 혹은 융) 서거 1496주기 추모대제를 봉행했다. 무령대왕 서거일에 맞춰 단독으로 추모대제를 지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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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대왕 1496주기 추모대제는 공주시가 주최하고, 공주문화원과 공주 향교에서 주관했다. 숭덕전에서 봉행한 1496 추모대제는 유가식 제례에 따라 진행되었다. 추모대제에 자리한 몇몇 사람의 의견을 모아 보면 무령대왕 붕어 당시는 유교가 전래하기 이전으로 불가식 추모대제로 받들어졌어야 합당한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무령대왕이 붕어하신 날이 음력 5월 7일이고, 살아 계셨던 날에 제사를 모셔야 하므로 전날인 음력 5월 6일에 제사를 모시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김정섭' 공주시장이 인사말에서도 언급했듯이 처음 행하는 무령대왕 추모대제다 보니 고증과 연구를 통해 점차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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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대왕 추모대제 초헌관 김정섭 공주시장이 첫 잔의 예를 올리고, 제례 축문과 폐를 태우고 있다   

초헌관에는 김정섭 공주시장, 아헌관은 '박병수' 시의회의장, 종헌관은 '박순규' 공주 향교 전교가 맡았으며 추모대제 절차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영신례: 신을 맞이하는 예
2. 전폐례: 폐백을 올리는 예
3. 진찬례: 음식을 바치는 예
4. 초헌례: 신에게 첫 잔을 올리는 예
5. 오신례: 신을 즐겁게 하는 예
6. 아헌례: 신에게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예
7. 종헌례: 신에게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예
8. 음복례: 제사에 쓰인 음식을 나누어 먹는 예
9.송신례: 신을 보내드리는 예
10. 망료례: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우는 예
11. 헌화: 참여자 헌화
12. 철변두: 제례에 쓰인 제물을 거두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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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례의 첫 순서로 나온 국립공주대학교 '최선' 교수와 무용단은 양손에 '칠지도(七支刀)'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칠지도를 만든 주체와 목적에 대해서는 다수의 설이 있지만, 연구자 대다수는 백제의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이 칠지도를 만들어 왜왕에게 준 것으로 믿고 있다. 불가식 추모대제로 바뀐다면 아마도 무희들 손에는 칠지도와 함께 연꽃이 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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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무령왕릉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뜻하지 않게 '1496주기 무령대왕 추모대제'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행사에 참석한 한 부자가 이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

부: 저게 무언지 알아?
자: 몰라요.
부: '칠지도'라는 거야. 일곱 개의 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

처음 행해진 추모대제를 통해 공주를 찾은 관광객들은 백제 역사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쌓고 깊은 지식을 다지고 갈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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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예인으로 일본 전통 가면극인 기가쿠 형성에 기여한 '미마지(味摩之)'의 가면극도 제례무로 선보여졌다. 고증에 의해 복원한 오공, 오녀, 금강, 곤륜, 치도 등의 가면을 쓴 무희들이 내빈과 관람객들을 압도하며 백제 제례무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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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를 본뜬 향로가 제단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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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는 불교와 도교를 융합한 백제의 사상관을 보여주는 유산으로 향로에는 74개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사이에는 오악사가 완함비파를 비롯한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이번 추모대제에서는 무희들이 백제대향로에 새겨진 오악사로 분하여 무대를 꾸며 주기도 했다.
 
무령왕릉 북벽 현실
▲무령왕릉 북벽 현실

1971년, 묘지석이 발견되어 삼국시대 고분 중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령왕릉이 세상에 드러났다. 지석에  의하면 그가 62세 때인 계묘년(癸卯年) 오월병술삭칠일(五月丙戌朔七日)에 죽었고, 2년 뒤인 을사년(乙巳年, 525년) 팔월계유삭십이일(八月癸酉朔十二日)에 대묘에 안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혼란스런 정세를 안정시키고, 기근으로부터 백성을 궁휼하며 백제 부흥의 빛이 된 무령대왕이다. 1496주기 추모대제 봉행을 계기로 그의 생애와 공적을 기리는 노력에 박차가 가해지기를 백제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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