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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그날을 기억하며

천안 3.1운동 제100주년 기념 ‘아우내봉화제'

2019.03.02(토) 18:22:12 | 충남희망디자이너 (이메일주소:youtae0@naver.com
               	youtae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천안에서는 호서지방 최대 규모로 열린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고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널리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고자 3.1운동 제100주년 기념 ‘아우내봉화제’를 3.1절 전야인 28일 천안시 병천면 사적관리소와 아우내 장터 일원에서 열렸습니다.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1일) 유관순 열사와 김구응 선생 등이 주도한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은 거사 전날 아우내 장터와 가까운 매봉산과 인근의 24개소에 봉화를 올려 다음날 거사를 알렸던 것을 기념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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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매봉산에서 피어오른 봉화는 다시 천안의 한 소녀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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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은 대한민국 독립의 시작을 알리는 거룩한 불꽃이며,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독립만세 운동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수천 개의 횃불이 밤 하늘을 훤히 밝히며 아우내 장터에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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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병천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씨와 어머니 이소제씨 사이의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1919년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이화 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3월 1일 탑골공원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열사는 고향에 내려와 만세운동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날의 기억들이 연극으로 재현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유관순 열사가 아버지 손에 독립선언서를 건내는 모습
▲ 서울에서 내려온 유관순 열사가 아버지 손에 독립선언서를 건네는 모습

이어 일본 헌병대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비폭력 평화주의 원칙에 의거해 거행된 아우내만세운동은 3000여 명의 군중들은 유관순 열사를 따라 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헌병대 앞에서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부르는 모습
▲ 헌병대 앞에서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부르는 모습

비폭력 운동이었지만 아우내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열사의 부모님을 비롯한 주민 19명이 현장에서 무참히 숨지고 유관순 열사도 체포돼 옥중 순국했습니다.

열사의 아버지가 일본 헌병의 칼에 쓰려지는 모습
▲ 열사의 아버지가 일본 헌병의 칼에 쓰려지는 모습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라는 열사의 말 한마디는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 두 마디의 말밖에 생각나지 않게 합니다. 목숨을 걸고 일제에 분연히 맞섰던 선열들의 애국혼이 한 세기를 이어온 3.1절입니다. 일제의 잔혹한 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가들의 의지와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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