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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1919년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울리던 그날

홍성군 농민 중심으로 진행된 3·1운동

2019.02.17(일) 10:19:18 | 충남희망디자이너 (이메일주소:youtae0@naver.com
               	youtae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울리던 그날을 알고 계십니까? 일제 강점기 시절에 억압된 그늘 속에 우리나라의 자주 국권을 위해 외쳤던 천지를 진동했을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있었습니다. 홍성지역의 3·1운동은 농민을 중심으로 여러 계층의 지역민이 적극적인 참여로 추진된 독립운동이 많습니다. 3.1 만세운동 때는 금마, 장곡, 홍동 지역에서 아주 물밀 듯이 만세운동이 벌어졌는데 이 사람들이 다른 곳과는 달리 전부 서민들이 주도해서 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마산 기미독립운동 기념비

▲ 철마산 기미독립운동 기념비


3·1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탈당한 우리 민족의 주권과 생존권을 되찾고자 전개된 민족독립운동이었습니다. 홍성지역의 3·1운동은 홍주문화권의 사상적 배경으로 의병 활동과 근대적 교육활동을 통해 민족의식과 독립 의식이 형성돼 3·1독립만세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금마면 철마산은 고려 명장 최영 장군의 무술 연마장으로 사통오달의 자연경관을 갖춘 명산입니다. 기미 3.1운동 당시 184명의 의사들이 자주독립을 외치고 이산에 올라와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르며 봉기하여 일명 봉화산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철마산에 기미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추모제를 올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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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금마면의 독립만세운동은 이재만(李載萬)과 민영갑(閔永甲)이 주도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가설 극장을 설치하고 연극 공연을 하는 자리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김재홍, 최중삼, 조재학, 조한원, 김종석등 동지를 규합한 뒤 인근의 친지와 친인척들에게 동참하도록 권유하는 한편, 인근 홍동면과도 은밀히 연락하여 각 리별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1919년 4월 1일 8시경, 이원교의 집에서 연극이 공연되는 도중에 이재만 등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관객 20~30여 명이 호응하여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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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연장 부근에서 독립만세 소리를 들은 주재소 경찰들이 즉시 출동하여 시위를 진압하고 이재만 등 주동자들을 체포하였습니다

이날 밤 8시경 연극이 무르익었을 때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해 관람객 30여 명이 동조하고 열창을 하였습니다. 이에 왜경이 출동, 강제 해산시켰다. 다음날 이재만, 민영갑, 최중삼, 김재홍, 조재학, 조한원, 김종석 등 7명은 왜경의 감시와 추격을 받으면서도 각 마을에 잠입해 의거 계획을 주지 선동했다.

조한원 등 체포되지 않은 사람들은 4월 2일 홍성 장터에 모여 다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4월 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연속하여 금마면 13개 리 전역에서 주민들이 각 리의 뒷동산에 모여 봉화를 올리고 치열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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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금마면 철마산을 거점으로 부평리, 원당산, 송암리 퇴뫼산 등 면내 각 산 정상에서 수 백 명 군중들의 횃불 독립만세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삼일각

▲ 삼일각


홍동면민들이 주도한 3·1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뜻을 모아 구정리의 이병익 씨와 팔괘리의 이창우 씨 등이 발기해 홍동노인회와 함께 선열들의 애국충절을 추모하는 기념비 건립하고 1973년 3월 1일에 제막하였습니다. 1978년 홍성군의 지원으로 기념비를 안치한 삼일각(三一閣)을 조성하였습니다.

1919년 4월 4일, 홍성 지역의 홍동면을 비롯하여 홍북면·금마면·구항면 등 4개 면이 합동하여 24개 마을에서 일제히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홍동면에서는 4월 4일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지만 정확한 인원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후 4월 5일 신기리 만경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은 홍동면민들이 대부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은 신기리에 거주하는 이제경, 조우식 등이 주도하였습니다. 만경산 앞에 위치한 봉우리인 꽃동산과 만경산이 이웃한 태뫼산이 연결되어 있어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위해 봉화가 올려졌습니다. 만세운동 중 갑자기 총성이 들리면서 당시 현장에 있던 이희도, 한명교 등은 현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이석만, 안중호 등은 관통상을 당했다. 왜경은 주민 13명을 구속하고 태형을 가해졌습니다. 마을 주민인 성낙붕은 고문 여독으로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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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에는 황윤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각 마을 별로 만경산·청광산·성산·석삼봉·종현봉 등의 산 위에서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부른 뒤 주재소를 습격하였습니다. 시위 군중의 기세에 놀란 일제 경찰은 도주하였고, 시위대는 연행자들을 석방시키고 해산하였습니다. 

장곡 3·1운동 기념비

▲ 장곡 3·1운동 기념비


장곡 3·1운동 기념비는 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에 참여하였던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되새기고 후세에 기리기 위하여 1994년 8월 장곡 3·1운동 기념비 추진 위원회가 주관하여 건립한 기념비입니다.

장곡면에서는 윤형중, 윤익중, 윤낙중 형제들의 주도로 4월 4일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윤낙중은 2월 말경 민족대표 33인이 주도하는 3·1운동을 듣고 3월 1일 탑골공원에 나가 독립선언서 선언식에 참가하였습니다. 윤익중은 독립선언서 100여 매를 가지고 윤낙중과 함께 3월 20일 귀향항습니다.

윤익중은 윤형중, 윤의석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의 행동강령을 결의하고 지역 인사와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하였습니다. 이들은 4월 4일에 윤만수, 이문재, 최기석, 최채선 등 화계리·광성리·신풍리 주민들 100여 명과 함께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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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에도 시위가 이어져 김동하·이화춘·김동완·한상철을 비롯한 주민 60여 명이 밤 11시에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출동해 있던 일제 군경의 발포로 해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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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에서는 이 같은 주민 주도의 3·1운동을 재조명하기 위해 태극기의 물결과 함께 온 군민이 함께하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인 ‘1919, 그날의 함성’ 추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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