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것은 목숨을 버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신념을 위해 버릴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비단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해당이 되는데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자기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를 순교(殉敎)라고 합니다. 그것을 기리는 흔적이 전국에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이 천주교 신자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청양에는 1821년(순조 21)에 태어나 1861년(철종 12)에 세상을 떠난 최양업의 생가터가 있습니다. 고종이 왕위에 올라갔을 때는 조선인중에 양반이 아닌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양반을 돈을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짰습니다. 최양업은 당시 양반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악의 근원으로 교회에서는 분열을 초래하고 국가로 볼 때는 인재 등용을 제한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피의 증거자를 순교했다고 하고 땀의 증거자를 순직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했기에 김대건 신부의 순교에 가려 최양업 신부의 활동과 업적은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아버지는 경환(京煥)이고, 어머니는 이성례(李聖禮) 사이에 태어난 최양업의 생가터는 바로 이곳입니다. 최초의 조선인 신부였던 김대건은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1846년에 순교하였지만 최양업은 조선 입국 후 활동하다가 순교가 아닌 과로와 함께 식중독이 겹쳐 1861년 6월에 사망하게 됩니다.
살아생전에 조선에 파견되는 선교사들은 파견되기 전에 조선의 실정과 풍습을 익힐 것을 주장한 것을 보면 실리적인 종교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은 외국의 실정이나 국제정세를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기득권으로 인해 결국 성공적인 개화에는 실패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