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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홍산에서 만난 조선시대 부여 모습, 홍산객사

2018.03.21(수) 22:27:09 | 설화 (이메일주소:ullallas2@naver.com
               	ullallas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며 나들이를 떠나기에 참 좋은 계절이 되었는데요. 이번 주말을 맞아 사비 백제 123년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는 부여로 주말 나들이를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홍산에서만난조선시대부여모습홍산객사 1

부여는 백제의 옛 도읍지로 역사적으로도 의미있는 문화재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오층석탑, 능산리고분군, 나성 등의 백제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선사시대, 청동기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부여 여행은 하루 이틀 정도로 다 돌아 보기에 큰 아쉬움이 남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부여의 여행지 중에서도 오늘은 홍산 객사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홍산에서만난조선시대부여모습홍산객사 2

객사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각 고을마다 두었던 관사로, 그 옛날 읍성 안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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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홍산객사는 1836년에 군수가 건립한 것으로 중앙의 정당은 정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동익실과 서익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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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왼편의 동익실은 툇마루를 설치해 전면이 개방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대청과 함께 그 내부 뒷편으로는 방을 만들어 온돌방을 꾸민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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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실은 동익실과 같은 구조이지만 온돌방 대신 마루방을 들이고 내부는 통칸으로 트인 넓은 대청마루가 마련되어 있었는데요. 이처럼 홍산 객사는 동익실과 서익실의 쓰임도 다르고 규모도 달라 좌우 균형을 이루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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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툇마루와 갈라진 기둥, 문고리에서도 오랜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조선시대 당시 홍산현 고을에는 객사를 비롯해 동헌, 내아, 향청, 현사 등 20여 개의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객사와 동헌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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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 오른편으로는 커다란 고목나무를 볼 수 있었는데요. 수백년 같은 자리를 지켜오며, 마치 객사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듬직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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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켠에서는 만인에게 덕을 끼친다는 의미로 홍산천에 놓았던 만덕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홍산 만덕교비를 볼 수 있었는데요. 만덕교는 아주 오래전 큰 홍수로 인해 무너졌지만, 과거 홍산 지역의 교통로로서 하천의 흐름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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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홍산 객사는 인부 4,000여명과 목수 20여 명이 5개월에 걸쳐 완성하였다고 하는데요.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잘 남아있어 주어 조선시대 관아의 모습과 구조 등을 엿볼 수 있다는 것에서 참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산 객사는 부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은 아니지만 옛 부여의 역사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홍산면에서 홍산 객사를 돌아보았다면, 관북리유적 내에 있는 부여 객사도 한 번 돌아보며 각각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여행의 색다른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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