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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신미통신일록' 세계기록유산 등재 쾌거

충남역사박물관 소장 김이교의 유물 20여점, 민족사의 위대함을 다시 보다

2017.11.27(월) 00:17:38 | 이종섭 (이메일주소:dslskj55@hanmail.net
               	dslskj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도내에 있는 역사적인 문화재나 유물은 신라시대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경북 경주와 함께 아주 많이, 그리고 중요한 국보급 혹은 보물급 문화재가 상당히 다양하다. 중요 문화재는 국립 공주박물관을 비롯해 국립 부여박물관, 그리고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각 지방자치단체 박물관과 사찰 등에 산재해 있다.
 
이중 지난 11월5일 충남역사문화연구원(충남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인 충남 유형문화재 제222호 '죽리 김이교 유물'(20건) 가운데 신미통신일록(1811년 신미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작성한 외교일지)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가 있었다.
그 직전에 당진의 합덕제가 세계관개시설물 유산 등재되어 충남도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기쁜 마음을 감출수 없었는데 바로 얼마후에 이런 경사가 있었으니 역시 다같이 기뻐하고 축하하며 널리 알릴 일이다.
 
이번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부산문화재단과 일본이 공동 등재를 추진하면서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유물소장 기관으로 참여협력한거라 한다.
부산의 경우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일본과의 교류, 협력, 수교 등에 관해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일본 역시 이번 신미통신일록이 존재했던 외교 당사국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공동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공주 충남역사박물관

▲ 공주 충남역사박물관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신미통신일록은 그것을 쓴 저자 김이교의 유물 20여점과 함께(김이교의 초상화까지) 현재 공주 충남역사박물관에 전시중이다.
현장에 찾아가서 생생하게 보여드린다.
 

신미통신일록세계기록유산등재쾌거 1


충남역사박물관 정문에 들어서면 이렇게 이번의 등재를 축하하며 알리는 대형 펼침막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신미통신일록세계기록유산등재쾌거 2


김이교의 신미통신일록과 함께 다른 여러 유물을 전시중인 충남역사박물관의 전시실 내부 모습이다. 관람객 2명이 전시품을 둘러보고 있다.
 

신미통신일록세계기록유산등재쾌거 3


이 섹션이 김이교 유물을 전시중인 코너다.
충남역사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쪽 맨 앞에 위치해 있다.
 

신미통신일록세계기록유산등재쾌거 4


이것이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신미통신일록 원본이다.
<신미통신일록>은 조선통신사 기록물 중 하나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일본 무사정권의 요청으로 일본에 12차례 파견한 외교사절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천, 지, 인 3권으로 구성된 신미통신일록은 죽리선생이 1811년 신미년에 통신정사로 일본을 다녀오면서 기록한 일정과 업무, 만난 사람, 받은 선물 등이 담겨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2007년 신미통신일록을 비롯해 죽리선생 초상과 통신정사 인장 등 이른바 ‘김이교 유물’을 일괄구입해 현재까지 보관 전시하고 있다.
이중 신미통신일록의 경우 충남유형문화재로서는 처음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신미통신일록세계기록유산등재쾌거 5


신미통신일록 전시본 본문 내용을 확대해서 펼친 것이다.
수록 내용은 경상감사와 동래부사 등 대일외교 일선을 담당하는 지방관의 보고와 예쪼 또는 비변사에서 그것에 대해 논의하고 처리한 내용들을 수록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항은 왜선의 도래, 일본 외교관의 입출입, 담당 역관(통역사)의 차출과 접대, 일본에서 가져온 외교문서의 기록과 보존, 외교사절끼리 주고받은 물품과 내용, 일본의 통신사 파견 요청과 통신사 파견시의 규정 등 다양하다.
신미통신일록은 아직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 서책을 번역, 그 안에 있는 중요한내용을 채록하고 역사저으로 의미있는 내용을 토대로 조선 근세사와 함께 조선 근세의 외교 정책 등을 자세히 파악할수 있을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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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묶음 겉면 모서리부분에도 한문으로 辛未通信日錄(신미통신일록)이라고 씌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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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교의 초상이다.
김이교(1764∼1832)는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로 알려져 있고 충남 예산 대흥 출신이다. 본관은 안동이고 할아버지는 대사간 김시찬, 아버지는 충청관찰사 김방행이다.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관직을 수행하던 중 순조가 즉위한 뒤 동부승지, 이조참의,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그후 1811년 2월 12일 일본 통신사의 사명을 띠고 출발해 5월 22일 부사 이면구와 함께 대마도로 건너가 국서를 전하고 그 해 7월 3일 대마도를 떠나 부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7월 26일에 왕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그 뒤 대사헌, 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831년 우의정에 올랐는데, 이 때 영의정과 좌의정이 모두 공석이어서 한 때 국정을 도맡아 수행하였다. 글씨를 잘 썼고 순조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저서에 죽리집(竹里集)이 있다.
김이교의 묘소는 예산군 대흥면 금곡리에 있었으나 2014년 신양면 죽천리 마을회관 뒷산 중턱으로 이장했으며, 이장 당시 출토된 의복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보존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앞에 쓴 김이교의 할아버지 김시찬은 충청감사 일 때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 공산성 안에 있는 '만하루'라는 누정을 건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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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교가 사용한 통신정사 인장 유물이다. 요즘은 사인으로 하지만 그때는 오로지 인장이었다.
이 인장들은 국왕의 명을 받들어 조선을 대표해 외교사절로 해외에 나가서 사용한 공식 인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의미도 아주 크다.
이 인장중 하나는 조선국왕의 대리인임을 뜻하는 '조선사자'(오른쪽 큰것)이고 다른 하나는 통신사의 최고책임자의 직인인 '통신정사(왼쪽 작은 것)'이다.
원래 조선시대 관청에서 사용하던 관인은 쇠로 만들어진 철인이다. 하지만 이 통신사 인장은 벽옥에 새긴 인장이다. 이는 현재까지 조사된바로는 김이교가 통신사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뒤 통신사절로 나갔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모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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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인장 외에 김이교가 사용했던 여러 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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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김이교의 호패이다.
김이교 호패는 2점으로 물소의 뿔로 만들어진 각패 1점과 코끼리의 상아로 만든 아패 1점이다. 호패는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발급한 패로서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다. 호구 파악, 유민 방지, 군역의 조달, 신분 질서의 확립, 향촌의 안정 유지 등을 통한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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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교 증시교지다.
교지란 원래 조선시대 왕이 신하에게 관직, 자격, 시호, 토지, 노비 등을 내려주는 명령서다.
이 교지는 1832년(순조32) 김이교가 사망하자 그해 12월 국왕이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내린 것이다.
김이교가 받은 문정이라는 시호는 충실하고 예로서 사람을 잘 대접하였다 하여 문(文)이라는 글자를, 맑고 곧은 마음으로 스스로 절제를 지켰다하여 정(貞)이라는 글자를 내린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종친과 문무관 중에서 정2품 이상의 실적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시호가 주어진다. 시호에 사용되는 글자는 120자 정도라고 하는데 시호는 한자 한자마다 정해진 뜻이 있어서 생전의 행적에 맞는 글자를 조합하여 2자로 만들고 시호 아래 공(公)자를 붙여 부른다.
 
이번 신미통신일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등재 쾌거는 충남의 문화재와 유물의 역사적 우수성과 그 가치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므로 충남도는 앞으로 예산군과 협의해 이 서적의 번역사업, 학술행사, 특별전 등 후속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오는 2019년은 ‘예산지명 1100주년’이라고 하니 그 시기 이전에 신미통신일록의 번역이 완성되어 다시한번 더 크게 빛을 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신미통신일록의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우리 문화의 우수성, 충청남도 선조들의 위대한 민족문화적 우수성을 다시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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