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현서원의 홍살문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는 충청남도에서 최초로 건립된 '충현서원(忠賢書院)'이 있다. 고청 서기(孤靑 徐起 1523~1591) 선생이 20여 년을 공암(孔岩)에 머무르며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충현서원은 고청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1581년(선조14)에 세운 곳이다.
'공암서원'이라 부르던 '충현서원'은 1625년(인조 3) '충현(忠賢)'으로 사액을 받았다.
홍살문 너머 서원의 주요건물로는 하마비, 관리사, 강당(박약당;博約堂), 충현서원 사적비와 충현서원 사실 우암 송선생 추향기 그리고 충원서원이 배치되어 있다.
▲ 충현서원의 외문(=외삼문) 전경
▲ 충현서원 사우 전경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충현서원'안과 계룡산의 한 줄기인 고청봉의 단풍이 감탄사가 절로 쏟아져 나올 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 충현서원 현판
1871년(고종 8)대원군이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기 전에는 사우와 신문, 강당, 동재, 서재, 재실, 전사실, 직사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서원은 소실되고, 1610년(광해군 2)에 재건립된다. 이후 17세기 후반 '명제 윤증'에 의해 한차례 중건되기도 한다. 오늘날의 충현서원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중건된 것이라 한다. 겹처마, 익공형 공포, 맞배지붕, 복발형 초석 등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제관;헌관, 알자, 여러 집사들이 제향을 끝내고 한자리에 모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서 충남 기호 유학의 상징인 '충현서원'을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자 '우리동네 문화 사랑방, 충현서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0월27일(금)에 있었던 제향은 '습제'라고 한다. '습제'는 오늘날의 전야제나 리허설에 해당하는 용어로 10월28일 (토) 오전9시부터 오후5시30까지 진행되는 '제2회 충현서원 문화제'가 시작됨을 고하는 의식을 의미한다.
▲ 충현서원 주자 존영과 위패
임진왜란 중 서원이 불타면서 '주자 영정'도 화를 당하여 불에 타고 말았다. 이후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다시 제작되어 9점의 주자 영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8호)이 '충현서원'에 소장되어 있다. '충현서원'의 배향인물은 주자(朱子)를 중심으로 석탄 이존오, 정간 이목, 동주 성제원, 고청 서기, 중봉 조헌, 사계 김장생,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선생이다.
제사상에는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 조기, 채소가 진설되고, 생쌀과 조가 올라와 있었다. 무를 긴 깍둑썰기로 올린 점도 독특하다. 밤과 호두, 육포 등과 같이 마른 것은 대나무 살로 만든 '죽변'이라는 제기에 담아 올린다.
조선 후기 서원의 폐해로 서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거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각 지방의 질서를 유지하고 교육을 담당했던 순기능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두 시간여 이어진 긴 제향에 고령의 참배객들은 앉았다 섰다를 반복했다. 이곳에 모인 참배객들이 더는 제향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면 서원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근심이 크다.
▲ 와송과 단풍이 멋스러운 담장과 박약당(우측)
유생들의 강습장으로 쓰이던 강당은 1989년 중건되었다. 현재는 학생들이 서예를 익히고, 경전을 강독하는 공간으로도 쓰이고 있다.
담장 밖에서 서원 안의 모습을 궁금해 했던 그 옛날의 풍경은 이제 바뀌어 가고 있다. '제2회 충현서원 문화제'는 작년보다 한층 더 발전하여 주민의 화합의 장이 되었다. 서원의 순기능을 되살려 우리의 전통 공간인 '충현서원'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으로 재탄생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