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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땅속에서 빛을 바라보기 위해 올라온 척화비

2017.10.06(금) 12:25:49 | dreamyoung (이메일주소:kge0227@nate.com
               	kge0227@nate.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땅속에서빛을바라보기위해올라온척화비 1

신창 척화비는 신창초등학교 진입 도로 초입에 위치하여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척화비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유적이나 유물에 관한 관심이 늘면서부터 작은 비석조차 그냥 지나침 없이 보게 되는 습관 덕분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비를 볼 수 있었다. 신창 척화비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어 있다.

땅속에서빛을바라보기위해올라온척화비 2
 
[척화비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297]

척화비는 고종(1871) 때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과 화합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서울과 전국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석으로, 전국에 무려 200여 곳에 세웠으나 거의 땅에 묻혀 있고 현재 발굴된 것은 고작 34개에 달한다고 한다.
임오군란을 빌미로 조선에 들어온 일본이 척화비 철거를 요구하면서 비의 일부분은 철거되었으나 그러하지 못한 것은 아예 땅에 묻어 버렸다. 따라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척화비는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어 다시 땅 위에 세워진 것들이다. 이 신창 척화비 또한 땅속에서 빛을 바라보기 위해 올라온 처절함을 가지고 있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으면 화의인데, 화의를 주장함은 매국이다"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고 하고 그 의지를 이렇게 작은 비석에 새기고 전국에 그 뜻을 알리고자 했다.
신창 척화비는 현재 남아있는 몇 안되는 비석들 가운데 하나로 당시의 강력한 쇄국 의지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이곳과 가까운 곳으로 천안 독립기념관 내에도 척화비가 보존되어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찾아가 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비록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그 당시 신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되어 결과적으로 근대화가 조금이라도 빨리 정착되지 못한 결과가 되었을지라도 그 당시 개항을 맞는 조선의 절체절명의 결정에 이 또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보존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된다.

이 작은 석비 하나에 그 당시 병인양요, 신미양요 두 전쟁으로 인해 국가가 위기 사태의 기로에 서있으면서도 결의를 다지고자 했던 의지가 깃들여져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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