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예산의 화순옹주 홍문과 백송공원

2017.09.20(수) 00:05:16 | 게임이론 (이메일주소:gamethory7@gmail.com
               	gamethory7@gmail.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 (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와 정빈 이씨 (靖嬪 李氏, 1694~1721) 사이에서 태어난 화순옹주는 조선의 왕녀들 중 유일하게 열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에는 화순옹주 홍문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예산의화순옹주홍문과백송공원 1

1732년 (영조 8)에 영의정을 지낸 김흥경의 아들인 월성위 김한신과 혼례를 치르고 행복하게 살았으나 1758년 김한신이 불과 3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그 죽음을 애도하며 곡기를 끊은지 14일 만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산의화순옹주홍문과백송공원 2

자식이야기만 두고 보면 영조도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통해 노론 일파의 당색을 조정하여 이미지 쇄신을 노렸으나 뿌리 깊게 박혀 있던 트라우마를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하네요. 남편이 죽고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화순옹주가 1758년에 세상을 떠나고 불과 4년 뒤인 1762년에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습니다. 

예산의화순옹주홍문과백송공원 3

지금은 옛날의 건물은 없고 그 터만 남아서 화순옹주 홍문이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묘막터는 53칸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불타 없어지고 주초(柱礎)만이 남아 있습니다. 

화순옹주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나 조카 김이주를 양자로 들이는데요. 그 김이주의 막내 아들인 김노경이 기계 유씨와 결혼해서 첫 아들을 낳는데요. 그가 바로 추사 김정희라고 합니다.
곡기를 끊고 죽을 정도면 정말 김한신을 사랑했던지 그 환경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화순옹주의 삶은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예산의화순옹주홍문과백송공원 4

이곳에는 홍문 외에 화순옹주와 김한신(金漢藎)의 합장묘, 김정희묘·김정희 고택이 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이 주변에 있습니다

예산의화순옹주홍문과백송공원 5

화순옹주 홍문에서 조금만 아래로 내려오면 백송공원이 있습니다.

예산의화순옹주홍문과백송공원 6

예산 백송공원에는 추사 김정희의 삶을 형상화한 작품도 있고 백송도 있는데요.   가을여행에 어울리고 희귀한 백송도 만날 수 있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게임이론님의 다른 기사 보기

[게임이론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