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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온양행궁터 속 작은 비석 신정비

2017.09.19(화) 08:48:13 | dreamyoung (이메일주소:kge0227@nate.com
               	kge0227@nate.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온양행궁터속작은비석신정비 1

행궁은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을 말한다.
여기 온양은 임금님들의 주요 행차지로 많이 찾아오던 곳이다.  아예 온양에 행궁을 두고 온양행궁이라 불렀다. 태조 때 임시로 세운 행궁이 세종 때에는 아예 정식으로 지어 사용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휴양과 국정을 살피던 온양행궁도
▲ 조선시대 임금들의 휴양과 국정을 살피던 온양행궁도 

그만큼 온양에 조선시대 임금들이 자주 행차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온양의 온천수 덕분이다.  온양 온천은 온양에 오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안내문으로도 그 효능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온천수는 알칼리성 고열 온천으로 수질이 좋고 수량도 풍부하여 신경통, 관절염, 피부병, 위장병, 고혈압 등의 각종 성인병과 피부 미용에도 좋은 만병통치로 통하는 게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온수군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종, 세조, 현종, 숙종, 영조, 정조까지 휴양 및 치료의 목적으로 이곳에 머무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57cm X 38cm 크기의 작은 신정비
▲ 57cm X 38cm 크기의 작은 신정비

여기 또 하나의 온양행궁과 관련한 작고 오래된 비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신정비는 조선시대 세조가 1468년에 충청도를 두루 살피며 돌아보고 속리산 복천사를 거쳐 환도하다가 온양에 머물고 있을 때 온천 옆에 있는 냉천을 발견하고 이를 "신정"이라고 칭한 것을 기념하며 1476년에 건립한 비석이다.

비는 사각 대리석 위에 화강암으로 세워져 있으며, 비문은 중추원부사 임원준이 지었고 그것을 이숙함이 썼으나 대부분이 닳아 없어져 대부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비록 그 비문은 알 수 없으나 다시 한번 온양 온천에 대한 역사적 인증이 확인되는 셈이다.  

온양행궁터속작은비석신정비 2

역대 왕들의 휴양지로 삼았을 정도로 정평이 난 온양의 온천 그리고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에 대한 이야기가 얽혀져 있는 영괴대 또 근방에는 세종대왕의 눈병을 낫게 한 어의정 등과 같은 유적물 등이 존재하는 이곳은 아산의 온양온천이다.
 
온양행궁터속작은비석신정비 3

신정비를 품고 있는 고전적이고 고즈넉한 온천 호텔 정원을 거닐다 보니 그 옛날 신하들이 임금을 줄지어 따라붙는 광경이 연상되기도 해서 괜히 입가에 웃음이 새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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