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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아산의 문화유산 김육비를 들여다보다

2017.09.06(수) 07:47:30 | dreamyoung (이메일주소:kge0227@nate.com
               	kge0227@nate.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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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비는 조선시대 문신 김육이 대동법을 주창하고 시행한 것을 송덕하기 위한 송덕비이다.
김육은 1580~1658년까지 활약한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3세에 임진왜란을 겪기도 한 조실 부모한 천재소년이었다고 전해진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605년(선조)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녔고, 병자호란 와중에 김육은 충청도 관찰사가 되자 백성들을 구제할 방안으로  대동법과 균역법의 시행을 건의하였다. 이에 아산 신창에 김육비가 세워진 연유이기도 하다.

대동법은 공물법을 폐지하고 쌀과 포로 대신하는 것으로 이를 시행함으로써 농민의 부담을 줄이고 나라의 재정을 확보될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시행되었던 가장 합리적인 세법으로도 알려진 대동법은 이미 이원익과 한백겸의 건의로 광해군 때 경기도에 일부 실시한 적이 있었지만 전국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가 김육의 시행으로 충청도와 전라도를 시작으로 대동법이 실시되기 시작한다.
김육의 대동법 시행 후 좋은 성과를 거두자  효종 10년(1659)에 대동법 시행 기념비도 세워지는데 그 비는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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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비는 거북이가 비석을 받치고 비석 위에는 머릿돌이 올려져 있다.  또 머릿돌에는 두 마리의 용이 다투는 듯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비석을 관찰하면 거북이가 비석을 받치고 있는 게 일반적인다.  여기서 거북이를 자세히 보면 머리는 용이요 몸은 거북임을 알 수 있다. 양을 의미하는 용과 음을 의미하는 거북의 몸의 합체로 음과 양의 조화로 서로 순환하며 영원 무궁토록 지속된다는 의미로 이것은 비석에 새겨져 있는 주인공의 명예가 영원함을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도 김육의 비가 거북이의 몸 위에 세워져 있는 의미를 깨닫고 그의 공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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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에는 "창설 대동 성요편면"이라 쓰여 있으며 후면에 "순치십칠년경자오얼 일립"이라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비석의 건립 연대는 1660년으로 추정한다. 김육비 옆으로는 알 수 없는 많은 수의 비석들이 같이 세워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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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옆의 많은 오래된 비석들과 함께 한편에는 현대식 기념비들도 볼 수 있었기에 지금이나 옛날이나 그 형태와 명칭만 바뀌었을 뿐 그 의미는 같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김육비 위치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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