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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임진왜란 조선을 지키던 소주 가씨 사당

2017.09.04(월) 21:23:00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중국에서 조선으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요. 역사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라나 고려때 귀화한 사람들도 있지만 전란때 특히나 많이 정착했던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조선을지키던소주가씨사당 1

조선땅까지 와서 왜군과 싸우던 소주 가씨(蘇州賈氏)의 시조인 가유약, 가상, 가침 등의 삼대를 기리기 위해 충남 태안군 남면 양잠리에 사당을 세웠습니다. 소주 가씨의 중시조인 가유약은 중국의 이름난 장군으로 임진왜란때 원군으로 들어와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는 가상, 가침과 함께 조선에 들어와 왜군과 싸우다가 부산에서 가유약과 가상은 전사하였습니다. 
가침의 아들 4형제는 중국으로 돌아가려다가 가지 못하고 그냥 태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당은 비교적 늦은 조선 철종 2년(1851)에 숭의사가 세워지게 된 거죠. 

임진왜란조선을지키던소주가씨사당 2

임진왜란때 와서 한반도에 자리잡은 소주 '가'씨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데요
소주 가씨의 후손이 많지는 않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약 1만여명이 안된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조선을지키던소주가씨사당 3

소주가씨의 뿌리의 흔적이 남겨 있는 숭의사가 있는 태안과 서산에는 대부분의 가씨가 모여 살다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충청도 지역에 극심한 생활고가 덮치자 배를 타고 인천으로 올라가 살아서 그곳에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한반도 최초의 귀화인은 은나라가 망한 후 고조선에 망명한 기자(箕子)로 이후 고려는 ‘내자불거(來者不拒: 오는 사람은 거절하지 않는다)’라 해서 개방과 포용정책을 썼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때 전사한 명나라 장수 소주 가씨등이 남아 한반도를 같이 일구어 왔습니다. 

임진왜란조선을지키던소주가씨사당 4

전란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하기 위해 한반도로 와서 자신의 뿌리를 내린 소주 가씨 사당인 숭의사가 태안에 자리한 것을 보면 다문화에 대한 오랜 역사가 멀리 있지 않음을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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