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아산은 온양군, 신창현, 아산현 3현군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져있고 그중 온양이 행정 중심지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온주아문을 아산시 읍내동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온주아문은 고종 8년에 흥선대원군이 국정을 세신하기 위한 방안으로 성벽 등을 정비하면서 세웠다고 하는데, 관아 문루의 현판에는 온양이 아니 온주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신라 문무왕 3년에 군명을 온주라 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지금도 온주라는 명칭은 여러 상호나 단체명, 주소명 등으로도 사용되어 그 흔적이 이어짐을 볼 수 있다.
관아 유적지를 돌다 보면 문루 앞 비석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보통 그곳 동헌을 거친 현감, 관찰사들의 공덕비를 세워둔다.
이곳에는 문루, 동헌, 객사, 아사, 향청 등의 건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관아문루와 동헌 단 두 건물만이 남아있어 정원이 허전해 보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동헌의 일부를 보수중에 있었다.
동헌은 지금의 군수 직무실 정도의 쓰임이 되는 곳으로 과거 일제 시대에는 주재소, 해방 후부터는 파출소 1988년도 까지는 온주동 동사무소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두 개의 단촐한 건물들만 남아있는 곳이지만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된 이력 만큼은 남달라 보인다.
온주아문을 관아 안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계단을 이용해 이층으로 오르면 마을의 전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또 온주아문과 멀지 않은 곳에 당간지주도 볼 수 있는데 절의 깃발을 달고 고정시키는 당간지주가 있다는 것은 그곳이 절터라는 것을 의미한다. 당간지주를 보존하기 위해 돌벽으로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는 모습이다.
작년 11월에는 온주아문 관아에서 122년 만에 아산 동학 농민혁명군 제1회 추모제가 거행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조선의 관청이 지금 현대에서도 쓰임을 잃지 않고 사용된다는데 참의미가 깃들여져 있는 거 같다.
온주아문 및 동헌> 충청남도 아산시 온주길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