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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온주아문으로 배우는 역사 이야기

2017.08.21(월) 20:21:11 | dreamyoung (이메일주소:kge0227@nate.com
               	kge0227@nate.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온주아문으로배우는역사이야기 1

조선시대의 아산은 온양군, 신창현, 아산현 3현군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져있고 그중 온양이 행정 중심지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온주아문을 아산시 읍내동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온주아문은 고종 8년에 흥선대원군이 국정을 세신하기 위한 방안으로 성벽 등을 정비하면서 세웠다고 하는데, 관아 문루의 현판에는 온양이 아니 온주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신라 문무왕 3년에 군명을 온주라 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지금도 온주라는 명칭은 여러 상호나 단체명, 주소명 등으로도 사용되어 그 흔적이 이어짐을 볼 수 있다.

온주아문으로배우는역사이야기 2

관아 유적지를 돌다 보면 문루 앞 비석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보통 그곳 동헌을 거친 현감, 관찰사들의 공덕비를 세워둔다.
이곳에는 문루, 동헌, 객사, 아사, 향청 등의 건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관아문루와 동헌 단 두 건물만이 남아있어 정원이 허전해 보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동헌의 일부를 보수중에 있었다.

온주아문으로배우는역사이야기 3

동헌은 지금의 군수 직무실 정도의 쓰임이 되는 곳으로 과거 일제 시대에는 주재소, 해방 후부터는 파출소 1988년도 까지는 온주동 동사무소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두 개의 단촐한 건물들만 남아있는 곳이지만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된 이력 만큼은 남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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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아문을 관아 안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계단을 이용해 이층으로 오르면 마을의 전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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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온주아문과  멀지 않은 곳에 당간지주도 볼 수 있는데 절의 깃발을 달고 고정시키는 당간지주가 있다는 것은 그곳이 절터라는 것을 의미한다. 당간지주를 보존하기 위해 돌벽으로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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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는 온주아문 관아에서 122년 만에 아산 동학 농민혁명군 제1회 추모제가 거행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조선의 관청이 지금 현대에서도 쓰임을 잃지 않고 사용된다는데 참의미가 깃들여져 있는 거 같다. 

온주아문 및 동헌> 충청남도 아산시 온주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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