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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봄길을 따라가 본 이한직가옥

2017.03.14(화) 14:01:16 | 찌삐소녀 (이메일주소:tpfpsk1379@naver.com
               	tpfpsk137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봄길을따라가본이한직가옥 1

따스한 봄 햇살에 보리싹이 파란 잎사귀를 틔우고 있는 3월입니다. 봄을 느끼고 싶어 가끔 농촌의 마을 길을 걸어가면 여기저기에서 봄을 알리는 자연의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보리가 자라서 알알이 맺히고 농부의 식탁에 올려질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대흥면 동서리에 있는 200년 전에 영의정을 지냈던 영의정 조두순 대감 집을 찾아보았습니다.

봄길을따라가본이한직가옥 2

이곳은 조선말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에 영의정을 지냈던 심암 조두순(1792~1870)이 살았던 '이한직 가옥'입니다. '이한직가옥'이란 이집을 한때 소유했던 사람의 이름이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이 매입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조두순은 동학 농민의 원인을 제공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서질이 되기도 합니다. 조두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조선 순조 26년(1826) 장원급제한 후에 영의정 자리에 올랐습니다.그는 경복궁을 중건하고 '삼군부'를 설치하는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역사적 이야기가 얽힌 이 집을 둘러보고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합니다. 
  
봄길을따라가본이한직가옥 3

원래는 건평 150평에 90칸의 대궐이었으나 동학 농민반란 때 가옥 일부가 소실되고 이한직이 집을 개량하여 40칸 중 현재 18칸이 남아 있습니다. 한때는 고부군수였던 조병갑이 동학농민군을 피해 이곳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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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자형의 안채와 - 자형의 사랑채로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ㅁ자형의 가옥입니다. 정면은 행랑채 대문건물로 6칸 옆면 1칸 뮤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안채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건물 중앙에 마루가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사람이 사는 흔적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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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을 나와서 담을 돌아 뒤쪽으로 가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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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민란의 탐관오리 조병갑이 농민을 강제로 동원해 만석보를 쌓고 세금을 고하게 물리던 폭정에 일어난 동학 농민의 반란에 그가 이곳으로 피신한 숨어 지내던 곳을 떠난 지 20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동학 농민반란 이후에 고종은 조병갑을 판사로 임용하여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을 사형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 경남 함양에 조병갑이 자신을 위해 세운 선정비 철거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조선 말기에는 외세의 간섭이 많아지고 국정이 혼미하여 매관매직이 심했던 때입니다. 고부군수 조병갑이 이 시기에 폭정을 일삼았고 현재 공주시 신풍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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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가 싹을 틔우는 은행나무에 앉아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듯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한직' 가옥을 ㄷ로아보며 역사의 흐름속에서 선조들의 행적을 돌아보고 현재 열어갈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봄이 오는 길을 따라가며 국민 모두가 행복한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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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갈색빛을 띠고 있던 자연의 색이 점점 녹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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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꿈꾸는 농촌의 들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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