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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보령 충청수영성에서 바라본 오천항

2017.02.01(수) 00:05:26 | 킴보 (이메일주소:kimvo97@naver.com
               	kimvo9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즐겨 찾는 오천항, 그곳을 5년전부터 일년에 3-4차례 방문을 하는데  5년동안 가장 많이 변한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충청 수영성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때만 해도 유적지가 있을법한 언덕정도라 생각했는데, 조금씩 문화재 발굴과 복원이 이루어져 이제는 보령 여행시 방문을 해봐야할 곳으로 변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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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보령 오천성으로 불리우다 2009년 보령 충청수영성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사적 제501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조선시대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의 사령부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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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에는 4개의 문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는 모두 없어지고 서쪽 망화문터의 아치형 석문만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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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그날 그 문을 통해서 바라본 하늘은 더없이 아름다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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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 수영성내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율청으로 추정되는 아래 건물과 객사 삼문만이 남아 있습니다. 진율청은 관내의 빈민구제를 위한 기관이었습니다. 진휼청까지 있었다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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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영성내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영보정입니다. 이곳은 수영성 안에 있던 정자로 1504년 수사 이량이 처음 짓고 계속 손질하여 고쳐 온 우리나라 최고 절의 정자였습니다.

뛰어난 경치로 조선시대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경치를 즐기며 시문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다산 정약용, 백사 이항복은 이곳을 최고의 정자로 묘사하기도 했다고합니다.

수영이 폐지되면서 없어져 현재는 터만 남았으며, 조선후기에 그려진것으로 추정되는 영보정도가 전해집니다. 현재는 복원이 되어 그곳에서 조선시대의 시인처럼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시한편 지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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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탁트인 바다 그 바다위에 떠있는 어선들을 내려다 볼수있는 곳입니다. 왜 조선시대 최고의 정자라고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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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수영성에서 바라본 오천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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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에 다시 한번 영보정을 바라보며 보령 충청수영성을 내려옵니다. 우리나라의 다른 수영성은 유적이 훼손되어 원래의 경관을 잃어 버렸지만 이곳 충청 수영성은 여전히 수영성의 위엄과 멋진 경관을 함께 즐길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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