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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올 설날 연휴엔 독립기념관 찾아볼까?

2017.01.21(토) 12:06:10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국난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조상들이 남긴 자취와 자료를 수집·전시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민족의 얼과 긍지를 심어 주기 위하여 1982년 8월 28일 독립기념관 건립 발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어 같은 해 8월 31일 국민의 성금모금을 시작하였으며, 10월 5일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설립하였다. 1986년 5월 9일 독립기념관법(법률 제3820호)을 공포·시행하였고, 1987년 8월 15일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흑성산록(黑城山麓) 400만㎡ 부지 위에 75동의 독립기념관을 세웠다.
 
1995년 8월 15일 ‘통일염원의 동산’을 준공하였고, 1998년 8월 11일엔 ‘구 조선총독부 부재공원’을 조성하였다. 건물 정면에는 '독립기념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지붕은 청동기와로 덮여 있다.
 
‘겨레의 집’을 지나면 '3·1문화마당'이 있고, 자료실· 제1전시관(겨레의뿌리)· 제2전시관(겨레의시련)· 제3전시관(나라지키기)· 제4전시관(겨레의함성)· 제5전시관(나라되찾기)· 제6전시관(새나라세우기)· 제7전시관(함께하는독립운동)이 있다.
 
전시관을 둘러싸고, 민족의 비상을 표현하는 높이 51m의 '겨레의 탑', 1995년 8월 15일에 철거된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자재로 조성한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염원의 동산',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추모의 자리', '새천년 숲', '백련못’ 등이 보인다.
 
총 9만여 점의 유물이 전시·보존되고 있으며 주요 시설물은 다음과 같다. ‘겨레의 집’은 독립기념관의 상징이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건물로, 길이 126m, 너비 68m, 높이 45m에 이르는 맞배지붕 형태의 기와집이다.
 
고려시대 건축물인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을 모방하여 설계하였다고 한다. ‘겨레의 큰마당’은 너비 222m, 길이 258m, 면적은 약 38,535㎡이다. 기념행사나 수만 명이 모이는 큰 행사를 치를 수 있다.
 
중앙부는 화강석 포장으로 되어 있고, 외부는 온양판석과 잔디가 깔려 있다. 전시관은 7개로 조성되어 있으며 연면적은 23,624㎡이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높이는 12.5m이며, 대공간,소공간, 그리고 특별전시실이 있다.
 
각종 전시 및 연구자료를 보관하는 ‘전시실’은 3개소(1,124㎡)가 있으며, 내부는 자료를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항온·항습시설을 갖추었다.
‘입체영상관’은 특수 안경을 착용하고 보는 디지털 영상물이 마련되어 있다.
 
독립기념관의 주요사업은 전시와 연구, 그리고 교육사업이다. 전시사업으로는 상설전시관 운영 및 계기별 특별 기획전시 개최를 하고 있다. 연구사업으로는 독립운동사, 일제침략사, 국난극복사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발굴·연구하고 국내외 독립운동 실태조사 및 보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사업으로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을 위한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 역사와 문화를 함께 체험해 볼 수 있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윤봉길(尹奉吉) 의사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충남 예산에서 아버지 윤황(尹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에서 태어난 윤 의사는 농민계몽을 위해 《농민독본(農民讀本)》이란 교재를 집필하여 야학회를 조직하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농촌의 불우한 청소년을 가르쳤다.
 
그는 또한 1930년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무엇인가 큰일을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장부(丈夫)가 집을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만주로 떠났다. 일본은 1932년 자작극인 일본 승려 살해사건을 이유로 상하이 사변을 일으켰다.
 
일본군은 시라카와(白川義則) 대장의 지휘 하에 전쟁을 승리하였다. 일본군은 일본 국왕의 생일축일인 천장절(天長節)과 전쟁 승리 두 가지를 축하하는 기념식을 갖기로 하였다. 윤봉길 의사는 이 기회를 택하여 기념식장에서 거사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김구를 비롯한 이동녕, 이시영, 조소앙 등 지도자들과 협의하여 거사를 구상하였다. 윤 의사는 야채상으로 가장하여 미리 기념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고, 기념식장에서 투척할 수류탄도 제조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윤 의사는 폭탄(저격용 물통 모양의 폭탄 1개, 자결용 도시락 모양의 폭탄 1개)을 감추고 식장에 입장하였다. 그리고 식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식장으로 다가가 수류탄을 던졌다.
 
이 폭발로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는 즉사하였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공사 시케미쓰 등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중국 등 전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는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격찬하였다.
 
윤 의사에겐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독립기념관 윤주경 관장은 ‘위대한 한국인’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로도 유명하다. 독립기념관의 개관 30주년이 개인적으론 사랑하는 여식의 나이와도 같아서 더욱 정겹다.
 
올 설날 연휴에 독립기념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자녀를 데리고 동행한다면 교육적 측면에서도 더욱 바람직할 듯 싶다.

웅장한 모습의 독립기념관
▲ 웅장한 모습의 독립기념관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 그리고 ‘청산리 대첩’ 승리의 주역 김좌진 장군의 동상
▲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 그리고 ‘청산리 대첩’ 승리의 주역 김좌진 장군의 동상

태극기 동산에선 애국심이 새삼 솟아난다.
▲ 태극기 동산에선 애국심이 새삼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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