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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교과서에 안나오는 독립기념관의 <특별한 소장품>

방학 맞는 청소년은 물론 가족,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 꼭 보세요!!

2016.12.21(수) 01:01:52 | 이종섭 (이메일주소:dslskj55@hanmail.net
               	dslskj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신께서 허락하기를 우리에게(도민리포터 개인에게) “역사의 한장면을 바꾸고 싶은게 있을 경우 한가지만 선택하라”고 기회를 준다면 필자는 단연코 1910년 한일합방 그 조약을 되돌려 놓고 싶다.
날짜로는 오늘이 아닌 8월29일이지만 이 치욕적인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그날, 그리고 그 후 진정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일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가 겪고있는 여러 불합리와 부조리는 여전히 남아있고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노략질을 당하면서도 굳건히 5천년의 역사를 지켜온 우리나라 아닌가. 이는 뛰어난 민족정신과 우월한 애국심, 충직한 국민들의 기개가 살아있기에 가능했다.
그런 역사적 사실과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이다.
 
독립기념관에 대해서는 그동안 도민리포터와 많은 분들이 현장 취재를 통해 알려왔고 소개를 했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대체로 기념관의 개괄적 소개와 현장 스케치 같은 느낌으로 알려왔다.
특정한 전시물에 대해 심도있게, 그리고 자세하게, 때로는 아주 중요한 자료에 대해 소상히 알리는 글은 별로 없었다.
하여 오늘 도민리포터는 독립기념관에 소장돼 있는 유물중 우리가 교과서나 일반 매스컴, 책 등에서도 잘 알려주지 않은 유품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독립기념관의 <특별한 소장품 포스팅>이라고 하면 좋을것 같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3


독립기념관 정 중앙에 보이는 겨레의 탑, 휘날리는 태극기, 그리고 본관이 방문객을 맞는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4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5


오늘도 민족의 국난극복의 현장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고 배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고있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6


독립기념관의 <특별한 소장품 포스팅> 기사를 쓰기 위해 가장 먼저 만난게 동학농민 군기다.
동학농민군은 청, 황, 적, 백, 흑의 오방기치를 가지고 다니며 만들어 썼다. 전투시에는 농민군의 사기진작과 부대표시를 위해 사용했다. 이 깃발에는 보국안민, 척왜척양, 후천개벽, 경천수심, 오만년 수운대 등의 구호를 적었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7


그리고 이어서 말로만 듣던 사발통문이다.
사발통문은 다 아는바처럼 주모자가 누군지 알수 없도록 거사에 동의한 20여명의 이름을 사발을 뒤집어 놓은 원을 그리며 써 넣은 것이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8


지금 보는 이것은 대한제국 여권이다.
대한제국에서 1904년 평안도 삼화군 거주 김도삼에게 발급한 여권이다. 처와 두 아들이 동행인으로 기제되어 있다. 이 당시에도 여권이 있었다는게 신기하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9


대한제국 시기 가옥매매 문서.
강원도 철원군 신서면 신탄리에 거주하던 김중철의 가옥매매문서인데 1903년 7월7일에 작성된 것이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0


아, 을사늑약.
1905년 11년 17일 일왕의 칙사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내각에 강요하여 외교권을 빼앗은 불법 협약 전문이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1


한일협약(이른바 정미7조약이다).
제3차 한일협약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함과 동시에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하여 한국의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07년 6월 한국이 을사조약의 무효를 세계 열강에 호소하려다 실패한 헤이그 밀사사건이 일어나자, 일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고종을 강제퇴위시켰고, 7월 24일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의 국권을 빼앗는 내용의 신협약을 작성하여 한국정부에 제출하자 이완용 내각은 하루 만에 찬성하여 순종의 재가를 얻었다.
공포된 7조약은 실제로 이미 이토가 한국의 정무 일체를 통제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명문화하고 권한을 다소 확장한 것에 불과했다. 이 조약에는 비밀각서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그 내용은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 및 경찰권을 일본이 운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2


일제가 작성한 의병상황 보고서다.
1908년 6월18일 평양경찰서장 무코다가 결부국장 마쓰이에게 보낸 평안도 함경도 지역 의병 활동에 대한 보고서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3


은사금 수령 독촉장이다.
일제는 한국을 강점한 뒤 관료와 지도층을 무마하기 위해 작위와 은사금이라는 것을 주었는데 1911년 3월19일 아산군수 김영진이 관내 유학자 임공렬에게 보낸 은사금 수령 거부관련 소환 통첩이다. 즉 일제의 은사금 따위를 받지 않겠다고 하자 소환하겠다는 통첩을 내린 것이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4


일본군 군복과 장교 모자.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5


일본군의 소총과 군도.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6


1920년 3월6일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발행한 증권.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하여 한국내 설립한 국책회사다. 일제의 한국농민 수탈의 선봉이 됨으로써 대한제국의 고혈을 빨아먹는 회사였으며 현재의 서울시 중구 을지로2가 한국외환은행 자리에 있었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7


1939년 10월 당시 호적등본. 전라북도 김제군 황산면장이 유희열이라는 사람에게 발급해 준 호적등본으로 일본 도항을 허가받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8


종자공출 전단
전쟁에 필요한 기름을 짜는 여러 종자를 많이 모아 내라고 강요하고 있다. 발행처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이라고 되어있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19


공출미 강요전단.
조선총독부 농상국에서 제작 배포한 미곡 공출 독려 포스터다. "한알의 쌀이라도 더 많이 나라에 바쳐서 귀축미영을 때려 부셔버리자"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귀축미영이란 귀신과 동물같은 미국과 영국이라는 뜻이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0


조선병합사.
1900년부터 한국에 건너와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일본인 도키오가 조선시대부터 사이토총독시대까지 역사를 저술해 1926년에 발행한 책이다. 일제의 한국에 대한 강제 병탄이 동남아의 평화를 위한 시대적 요구였다고 강변하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1


만세보 발간 보고서.
1906년 6월 만세보 발행인 겸 편집인 신광희 명의로 경무사 서상대에게 제출한 신문발간 보고서.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발의로 1906년 창간된 일간신문. 사장 오세창, 발행인 신광희, 주필은 이인직이었다. 후에 이인직이 시설을 인수하여 1907년부터 ‘대한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2


국채보상금 모집 상황보고 비밀문서.
1907년 8월22일 조선 통감부 경무고문 마루야마가 당시 전개되던 국채보상의연금 모집 상황을 보고한 비밀문서.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3


박은식이 쓴 한국통사.
국교와 국사만 살아있으면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라는 신념을 가지고 박은식이 망며지 중국 상하이에서 저술한 역사책.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4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한 13개조.
1919년 4월3일 중국지역에 망명한 애국지사들로 조직된 신한청년당이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점령한 사실을 적어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한 탄원서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5


만세운동을 두려워 한 조선총독 경고문.
3.1운동 당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 한 조선총독부가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진압하라는 조선총독의 경고문.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6


3.1운동 판결문.
3.1독립선언으로 피체된 민족대표 등 총 48명의 인적사항과 형량이 기록된 1920년도의 일제 판결문.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7


태극기 목각판. 3.1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 내기 위해 만든 목각판. 1919년도의 일이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8


신석구 정치범 카드. 이것을 보면서 '정치범'이라는 말은 이당시에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민족대표 33인중 한사람인 신석구의 정치범 카드다. 일제는 민족대표들에 대해 이같은 카드를 만들어 특별 요시찰 인물로 감시했다.
 

교과서에안나오는독립기념관의특별한소장품 29


마지막으로 손병희 외 46인의 재판기록철이다.
3.1독립선언을 주도한 혐의로 피체된 민족대표 손병희 외 46인에 대한 재판기록철이다.
 
이상 독립기념관에 소장중인 국난극복의 현장 자료, 민족의 위대한 선각자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힘썼던 흔적들과 발자취를 돌아 보았다.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우리 주변에 많이 남아있기에 우리는 하루속히 그것들을 청산해야 한다. 아울러 여기 포스팅한 내용들은 가정에서 다함께 보며 우리의 애국혼을 되새기고 특히 이제 방학을 맞는 청소년들에게도 읽혀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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