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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4대째 쇠뭉치와 함께한 60평생 '천상의 야장(冶匠)'

올해 10월 충남도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당진 대장간 손창식 선생

2016.11.15(화) 10:59:33 | 내사랑 충청도 (이메일주소:dbghksrnjs6874@hanmail.net
               	dbghksrnjs687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땅, 땅땅, 땅따당!
칙~ 치지~익, 칙칙~
풀무질한 1500도 안팎의 뜨겁고 시뻘건 불에 달궈진 쇠뭉치가 장인의 손에 의해 서서히 제모양을 갖춰간다.
쇠뭉치는 도끼, 쇠스랑, 호미, 망치, 낫, 칼... 등 우리가 가정에서 혹은 농삿일과 어로작업에 흔히 쓰는 모든 기구로 다듬어지고, 제품으로 거듭난다.
“여봐~ 쇠스랑 좀 손 봐줘. 다리 하나가 부러졌어”
“여기, 호미 팔지유? 서너개 주셔요. 낫도 2개 내주셔유”
대장간에서 평생을 일해 온 구릿빛 장인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그날따라 당진 장날이어서 대장간을 찾아온 손님들이 많아 유난히 더 그렇다.
 
어릴적 엄마 손잡고 나들이 갔던 장날에 본 대장간. 그때 모습과 영낙없는 그대로 철물점에서나 보던 물건들을 만드는 곳.
지금이야 모든 철제 기구들을 대형 공장에서 국화빵 찍어내듯 하고, 쇠붙이가 흔해빠져 녹이 슬면 그냥 내다 버리고 새 것을 사 쓰는 시대지만 물건이 귀하던 옛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망가지고 깨지고 부러진 농기구들이 찾는 곳은 대장간, 거기서 손만 보면 그대로 새것이 되고 다시 또 오랫동안 쓸수 있었다.
 
‘헌것 줄게 새것 다오’
오래되고 닳고 낡아서 제역할을 다 못하는 농기구를 다시 새것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 고강도의 쇠붙이를 풀무질하고 매질하고 다듬어 새로운 쇠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21세기의 대장간 야장(冶匠-대장장) 손창식 선생.

금년 10월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제41-3호 기능 보유자)로 등재된 손창식 선생
▲ 금년 10월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제41-3호 기능 보유자)로 등재된 손창식 선생

당진에서 증조할아버지부터 시작해 조부와 아버지를 거쳐 현재 4대째 이어온 대장장이라는 가업으로 마침내 금년 10월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제41-3호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아 화제를 모으고 있는 분을 취재했다.
 
올해 65세이신 손창식 선생이 당진시 시장남길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장간. 50여년 동안 당진을 떠나지 않고 이곳 농민들과 애환을 함께 하며 대장간을 운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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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된 구옥, 그리고 집 밖에 야적해 놓은 녹슨 철물들이 한눈에 봐도 이곳이 대장간임을 짐작케 해준다.
손창식 선생이 아버지로부터 야장 기술을 배우며 일을 시작한건 대략 1960년대초부터이고 대장간을 완전 인수받아 본격적으로 운영하며 가업으로 삼은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라 한다.
 
원래 손창식 선생과 그 위의 큰형님께서 고대면 대촌리에 살면서 아버지(손양철 선생. 작고)로부터 배웠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였던 손충영 선생으로부터 야장 일을 배웠다.
 
당진의 농민들이 시장에 들러 쇠스랑이며 곡괭이, 호미, 낫 등 손창식 선생네 대장간을 거쳐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유서깊은 곳이다.

대장간 내부
▲ 대장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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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진은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어서 생업의 형태가 반농반어(半農半漁)다. 그래서 대장간에서는 육지농업용 농기구뿐만 아니라 바지락을 캐는 작은 쇠스랑 등 어로작업용 어구(漁具)제작에도 독창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조새’같은 것을 만드는 야장기술이 가히 독보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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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는 두 갈래 쇠꼬챙이가 바로 조새다.
조새란 굴이나 바지락을 채취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도구로, 작은 곡괭이처럼 생겼다. 완도 해역에서 발굴한 11세기의 ‘완도선’ 안에서 현재와 거의 동일한 형태의 조새 2점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같은 사실로 봐서 조새는 그 역사가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전통 어구이다.
우리 충남 서해안 일대에서는 대개 ‘조새’라 부르고, 남해안 쪽에서는 ‘쪼시개’나 ‘조시게’, 경기도 안산과 인천 등지에서는 ‘줴’ 또는 ‘죄’로 부르는 등 지역별로 호칭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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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식 선생이 작업을 위해 쓰는 연료는 조개탄이다. 조개탄으로 불을 지펴놓으면 24시간 꺼트리지 않고 사용한다. 최고 1500도 전후까지 온도가 올라가고 여기에 자동차 브레이크 드럼이나 라이닝 혹은 겹판 스프링용 패드 같은 가장 강력한 쇠를 달궈 기구를 만든다.
이 재질의 쇠붙이는 일반 철과 달리 그 밀도가 치밀하고 강도가 아주 강력해 농기구 등을 만드는데 최적의 재료로 활용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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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겋게 달궈진 화로에 작업용 철근을 넣고 밀었다 당겼다를 반복하는 손창식 선생.
이렇게 대장간에서 만들어 내는 농어업용 기구들은 수초제거용 낫, 갯벌에서 쓰는 바지락 채취용 호미와 갯벌 쇠스랑, 갯장어를 잡는데 쓰는 창과 고기잡이용 창, 작은 어선에 쓰는 닻, 긁갱이, 굴 따기 조새 등이다.
그밖에도 각종 배수선용 도구, 그물을 수선하는데 쓰는 도구와 장식용 칼, 과도, 생선 손질용 칼 등 아주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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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에는 합덕 장과 신평 장이 아주 컸어요. 처음 야장 일을 배울때는 아버지를 따라 이 5일 장날에 맞춰 다니며 집에서 만든 호미, 낫, 망치 같은 것들을 들고 나가서 팔았어요. 워낙 튼튼하게 잘 만들어서 가지고 나갔기 때문에 우리 대장간 제품은 항상 인기였어요”
손 선생은 그때 일을 회상하며 행복해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기계화 되고, 값싼 중국산이 밀려들어 대장간이 그때의 영화는 다시 되찾을수 없다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나오는듯 했다.

매질(쇠를 두들겨 모양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손창식 선생
▲ 매질(쇠를 두들겨 모양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손창식 선생

매질을 해 주는 해머 기계. 과거에 손으로 망치질 할때는 참 힘들었지만 지금은 육중한 해머 기계가 대신해 주어 조금 낫다.
▲ 매질을 해 주는 해머 기계. 과거에 손으로 망치질 할때는 참 힘들었지만 지금은 육중한 해머 기계가 대신해 주어 조금 낫다.

대장간 일중 가장 힘든건 매질(쇠를 두들겨 모양을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불에 달궜다 해도 무쇳덩이를 망치로 두들겨 줄기를 가르고 뾰족하게 만들고 모양을 내는 일은 실로 고단한 작업이자 고도의 인내와 근력, 노동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예전에는 진정 오로지 팔의 힘과 망치로만 다 해냈다.
하지만 그나마 세월이 흘러 이젠 그 일도 조금은 수월해졌다. 즉 사람이 망치로 내리쳐서 하던 일을 지금은 이렇게 기계가 대신해 주고 있어 조금은 덜 힘든데 이 기계는 손창식 선생이 스무살 되던해부터 들여와 썼다고 한다.
손창식 선생이 쭈그려 앉아서 지금 하고있는 일은 쇠꼬챙이를 만들기 위해 달궈진 무쇠를 기계식 해머가 내리찍게 하는 일이다.
 
넓은 쇠판을 녹여 쪼갠 것. 이것을 더 매질하고 담금질 해서 쇠스랑을 만든다.
▲ 넓은 쇠판을 녹여 쪼갠 것. 이것을 더 매질하고 담금질 해서 쇠스랑을 만든다.

위사진의 쇠붙이를 다듬고 매질해서 완성한 쇠스랑.
▲ 위사진의 쇠붙이를 다듬고 매질해서 완성한 쇠스랑.

지금이야 혼자서 대장간을 운영하지만 불과 20~30년 전만해도 사람을 여럿 두고 일했다고 한다. 대장간에서 쇠를 달궈 모양을 내는 일은 고급 기술에 속해 그것은 윗사람이 맡고, 쇠를 단순히 두들기는 일은 아랫사람 즉 보조가 맡아서 했는데 당진에 한보철강이 들어서면서부터 이 보조일을 해주던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단다.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장간에서 만드는 농어구와 그 쓰임새, 대장간 제품을 찾는 이들이 여전히 있기에 소비자들이 직접 찾아오거나 여러 철물점에서 물건을 만들어 간다.
 
무형문화재로서 전통의 문화유산을 잇고 계신 분들의 적잖은 고민중 하나는 이 소중한 무형의 유산을 이어갈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점인데 다행히 손창식 선생은 그런 고민을 덜었다.
손 선생의 아들인 손용환 씨가 아버지로부터 야장 기술을 전수받아 가업을 잇기로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손창식 선생의 대장장 기술을 바탕으로 한 ‘당진대장간’은 4대째를 이을수 있게 되었다.
 
오랜 세월, 불에 그을려 허물이 벗겨진 얼굴 피부. 그러나 그에겐 이것이 영광의 상처다.
▲ 오랜 세월, 불에 그을려 허물이 벗겨진 얼굴 피부. 그러나 그에겐 이것이 영광의 상처다.

몇 년전에는 칼을 만들던 중 왼쪽 검지손가락을 베어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는 손창식 선생. 그의 구릿빛 얼굴도 60년 세월동안 뜨거운 화로불에 그을려 허물이 벗겨지고 피부가 많이 상했다.
하지만 대장간을 운영하면서 후회해본적 한번도 없고 두 남매도 잘 키워냈다. 그래서 피부가 벗겨진 얼굴은 영광의 상처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야장 일에 늘 자부심을 느끼며 내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화로에 붙어있는 불을 보살피며 열심히 쇠붙이에 매질과 담금질을 할거라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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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쇠 망치처럼 50년 긴 세월 꿋꿋이 이겨낸 그의 야장 인생에 진정 경의를 표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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