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텃밭에서 몸을 씻다

2016.07.31(일) 23:01:13 | 홍성아지매 (이메일주소:ssoonyoung@hanmail.net
               	ssoonyoung@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장마가 지난 뒤 땅콩 밭이 풀에 덮여 버렸다. 잡초에 강하기로 유명한 땅콩이라지만 게으른 농부를 만난 탓에 잡초들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풀이 너무 무성해 일단 낫으로 풀을 벤 다음 호미로 뿌리를 뽑는다. 땅콩 두둑 위에 자란 풀은 내버려두고 두둑 사이 고랑만 맨다. 한 고랑을 다 매고 땀을 훔치며 뒤돌아본다. 풀숲에 갇혀 있던 땅콩 밭에 숨통이 트였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민거리도 낫질 몇 번으로 사라졌다.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밭고랑을 지나 움츠린 내 등 위에 올라탄다. 온 몸이 홀가분하다. 

5년 전 가족과 함께 충남 홍성군의 한 농촌마을로 이사를 왔다. 그 후 텃밭을 매는 일은 아침 일상이 되었다. 유일한 사색의 시간이다. 풀을 정리하는 동안 복잡한 생각도 정리한다. 복잡한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낫질에만 집중하고 모든 생각을 내려놓는다. 일종의 낫질 명상이다. 그래서 고민거리가 생기면 텃밭으로 향하는 일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집 마당 앞에 딸린 텃밭이다. 반마지기 정도 되는 땅이 조용한 벗이 되어줄 줄은 서울에서 살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초여름 우리집 텃밭, 잡초와 풀이 함께 자란다
▲ 초여름 우리집 텃밭, 잡초와 풀이 함께 자란다

퇴근 후에도 텃밭에 들른다. 지친 몸이라 낫이나 호미는 들지 않는다. 불쑥 자라 있는 풀만 손으로 뽑는다. 그것도 귀찮으면 지난 새벽에 풀을 맨 고랑 한 끝에 서서 뿌듯한 마음으로 텃밭을 감상하거나, 자세를 낮춰 얼마 전에 뿌린 당근 씨앗에서 싹이 올라왔는지 살핀다.
 
시인이 저문 강에 삽을 씻었듯이 노을이 깔린 텃밭 위에서 머릿속의 찌든 때를 씻는다. 산업화 시대에는 온 몸으로 삽질을 했다면, 요즘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로만 삽질을 한다.

스트레스에 찌든 삽을 매일 씻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이다. 산업화 시대의 삽처럼, 머리는 현대인들의 소중한 밥줄이다. 하지만 기름 때같은 스트레스 찌꺼기는 좀처럼 벗겨지질 않는다. 그래서 다들 저녁 마다 술을 마시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스트레스 같은 기름 때는 몸을 움직여 땀을 흘려 닦아내야 한다. 

땅콩밭
▲ 땅콩밭

 “뭐하는 겨? 제초제라도 뿌리든지, 비닐로 덮든지 혀. 저걸 언제 손으로 다 매고 있댜?”
새벽예배 가던 동네 할머니가 몇 마디 건넨다. 평생을 논밭에서 살아온 농사꾼의 눈에는 ‘풀 반, 작물 반’인 꼬락서니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한번은 마을 이장님이 쓰다 남은 비닐을 주겠다며 제발 밭에 풀 좀 잡으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제초제 치고 비닐로 덮는 것이 더 힘들다고 얼버무린다.
 
농사일이 생계인 농민들에게는 작물을 얼마나 거두어들이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수확량은 뒷전이다. 사실 지난 봄 풀숲 속에서 캐낸 감자는 몇 개 되지도 않는 데다가, 유치원 다니는 둘째 아이 주먹만큼 작았다. 하지만 우리 밭 감자가 작아도 맛이 알차고 깊다. 농약은 물론 거름도 주지 않고 풀과 함께 자연 그대로 키워낸 맛이다.

거두어들이는 양은 적어도 우리 네 식구 먹을거리로는 충분하다. 그래서 작물이 죽지 않을 정도만 풀을 맨다. 농작물이 먹어야 할 땅 속 영양분을 풀이 조금씩 나눠 먹더라도, 풀과 경쟁하면서 자란 농작물이 더 건강하다고 믿는다. 건강한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풀을 매는 행위는 나의 신성한 노동이자 놀이이다. 손으로 풀을 매면 운동도 되고 정신건강에도 좋은데 제초제를 뿌리고 비닐을 씌울 이유가 나에게는 없다.
  

 

홍성아지매님의 다른 기사 보기

[홍성아지매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