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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병자호란때 순국한 충장공 이의배 신도비

2016.06.23(목) 20:33:00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의배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보신적이 있나요. 
이의배는 한산 이씨 가문으로 목은 이색의 후손이라고 하는데요. 그럼 문신일 것 같은데요. 특이하게 무신이랍니다. 조부인 이흥준 대부터 예산에 살기 시작했다는 이의배는 사헌부 장령(정4품 벼슬)을 지낸 이흡(李洽)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의배 신도비로 가는길
▲ 이의배 신도비로 가는길

이의배 신도비는 충남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산5-1에 있어요. 여기서부터 500여미터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신도비는 흔히 왕이나 과관대작등 평생업적을 비석에 기록하여 남긴 비를 말합니다.
 
이의배신도비
▲ 이의배신도비

바로 이곳이 이의배신도비가 위치한 곳입니다. 이의배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도량과 재능을 보였는데 특히 무예 솜씨가 뛰어났다고 해요. 뿐만 아니라 그는 사서(史書),논어 등 경전 읽기도 즐겨하여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다고 합니다.   
24살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부터 시작, 인조반정 때 세운 공으로 명천부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신도비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 신도비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전라좌수사가 되고 여러 관직을 거쳐 근무하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적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를 보아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에 죽산산성에서 적의습격을 받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충절을 기려 추후 영의정으로올려 추증하고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이의배 신도비
▲ 이의배 신도비

계단을 올라오니 이의배 신도비가 비로서 보이네요. 이곳의 비의 받침은 상당히 낮은 형태인데요 이곳에 비 몸체를 세우고 머릿돌을 올렸습니다.

신도비가 세워진 데에는 아마도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해서 그런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치열한 접전 끝에 아군의 방어선이 무너지나 피신 권유를 물리친채 살아남은 병사, 노비와 힘을 합쳐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합니다.
 
신도비
▲ 신도비

이의배는 생각보다 자료가 많지는 않더라구요

신도비의 머리부분
▲ 신도비의 머리부분

이의배 신도비는 영조 때 건립되었습니다. 숙종때 최석정의 건의로 씌여진 비명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남겨져 있습니다

신도비의 글 ▲ 신도비의 글

“신하된 자 관록을 먹으면서 누군들 충성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없으리오만 변란을 만나 죽고 사는 일 앞에 서면 목숨을 바치는 자가 드물다. 공(公)이 국난에 항거하여 흰 칼날 무릅쓰기를 주저하지 않은 일과 한원군(아들 이목)이 적에게 굴복하지 않아서 부자가 사절한 것은 청사를 빛낸 것이다…”

신도비에 담긴 의미
▲ 신도비에 담긴 의미

이의배 신도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옛날 병자호란때 당했을 삼전도의 굴욕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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