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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대한민국 유일 돌 족보 ‘석보(石譜)’를 아세요?

당쟁 사화 사고로부터 족보 지키려던 홍성 연산서씨 가문

2016.06.23(목) 15:38:02 | 내사랑 충청도 (이메일주소:dbghksrnjs6874@hanmail.net
               	dbghksrnjs687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요즘은 관심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웬만한 집안이면 예전부터 내려오는 족보(族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필자의 경우도 1980년대에 현대식 활자와 책으로 엮은 것을 아버님으로부터 물려 받아서 보관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 나이가 50세 안팎 이상쯤 되는 사람들은 집안에 족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족보는 동일한 씨족 가운데서도 본관(本貫)을 중심으로 시조 이하 세대의 계통을 수록함과 동시에 시조로부터 작성 당시의 친족 성원들에 이르기까지 선대의 이름과 호(號), 행적 등을 상세히 기록한 기록물이다. 대개 책으로 엮어져 만들어 놓는다.

이는 동족의 근원을 밝히고 세대의 순서를 알릴 목적으로 편찬되었는데 족보의 역할은 가문의 조상(대부분 부계)을 추앙하고 그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존속들을 모아 그 상하 수평관계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일개 가문의 귀중한 자료다.
이를 통해 족보에 이름이 실린 인물들의 사회적 배경, 즉 신분을 밝힘으로서 부계로 연결된 동족간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 족보는 당연히 종이에 글씨로 써서 책처럼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한 가문의 족보가 옛 붓글씨체 원필 그대로인 경우 책으로 몇권씩 되고, 그나마 현대식으로 재출판 했을 경우 두꺼운 백과사전처럼 단행본 1~2권 혹은 3~4권으로 만들어져 있다.
 
오늘 도민리포터가 포스팅 하려고 하는 기사는 종이에 붓글씨로 만들었을 족보를 다름 아닌 돌판(암석)에 새겨 만든 것, 즉 놀랍게도 석보(石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것이라는 점과 그게 다름아닌 우리 충남 홍성에 있다는 사실이다.
 
홍성군 구항면 일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연산서씨 대종회 문중.
이 가문에서 구항면 지정리 580번지 소재 암석굴에 보관 중이던 홍성연산서씨 석보가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연산서씨 가문에서는 암석굴에 보관중이던 석보를 관리의 중요성과 도난 우려 등을 감안해 한달 반 전인 5월초에 홍주성역사관에 기탁했다.
그 덕분에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석보의 존재, 즉 돌판으로 새긴 족보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오늘 도민리포터가 홍주성역사관의 도움을 받아 석보를 보관해 오던 암석굴과 그 주변 문중의 석비, 그리고 실제 석보의 사진, 석보 기탁 당시의 실황 현장 사진 등을 종합적으로 아울러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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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석보를 보관해 오던 구항면 지정리 580번지 소재 암석굴이다.  
석보 유물은 암벽을 깎아 만든 가로 40cm, 세로 30cm정도의 석굴에 보관되어 전해오던 것을 그 후손들이 1996년 12월 5일 개봉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암석굴 앞으로는 왕복 2차선 국도가 나 있고 그 건너편 아래쪽에는 연산서씨 선영 묘소도 함께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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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가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만들어진 문화재 안내 표지문. 석보에 관한 개략적인 내용이 적혀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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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굴 앞에 세워져 있는 ‘석보 봉안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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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를 보관하던 암석굴의 석면에 ‘연산서씨묘...’라 적혀 있는데 비바람에 풍화되어 더 이상 읽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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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굴 앞 길 건너편에 있는 연산서씨 선영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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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덕비도 함께 세워져 있다.  
 
이제 지금부터 아래의 석보 기탁 제례 관련 사진은 홍주성역사관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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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사진은 기탁에 앞서 선대에 이 사실을 석보대제 의식을 치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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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연산서씨 문중을 대표해 서용규 회장이 유물을 인계했고 다른 관계자들과 홍주성역사관 관계직원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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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서씨 가문에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종이족보가 아닌 오석을 이용해 석판에 족보를 새겨 보관한 이유는 문중의 역사를 화재, 수해로부터 지키고 영원히 보존하고자 하는 자손들의 열망 덕분이라 한다.  
씨족사회, 가문의 존엄성, 혈통의 자존심과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보여준 한국적 정서의 표징이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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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보는 지난 1997년 8월 5일에 그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로부터 문화재자료 354호로 지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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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석보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를 보관하고 있는 홍주성 역사관으로 가 볼 차례다.  
현재 이 석보는 유물의 보존을 위해 수장고에서 보관중이라 한다.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쳐 상설 전시를 할 것인지, 혹은 유물의 훼손을 막기 위해 부정기 특별전시를 할 것인지는 나중에 알수 있을것 같다.
 
그래서 도민리포터가 특별히(?) 원판 사진을 구해서 보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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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세로 36cm, 가로 25cm, 높이 3cm의 사각 입체 오석(烏石) 4판 8면으로 제작돼 있는 석보 실물이다.  
이 속에 연산 서씨의 세계를 4500자로 음각해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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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판 앞면이다. 이 석보의 제작연도는 숭정기원후사계축추칠월기(崇楨紀元後四癸丑秋七月記)라는 기록으로 보아 1853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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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판 앞면 확대본 일부이다.  
한 집안의 세계(世系)를 적어 가문의 혈통과 맥을 후대에게 전하는 목적의 족보를 석판에 새긴 또 다른 이유를 후대에서 유추해 보건대...
조선시대에는 잦은 사화, 당쟁 등으로 족보의 보존을 기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세파를 고려하여 석보를 제작한 것으로도 이해가 된다.
현재 연산서씨 가문은 500여년 전 구항면 지석리 보개산 기슭에 정착하여 마을 이름을 덕은동이라 하고 집성촌을 형성 현재까지 이 일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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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2판 앞면과 확대본 일부.  
연산 서씨 가문에서는 1709년 족보 초판인 을축보를 시작으로 1773년, 1832년(황산보), 1853년(석보), 1887년, 1937년, 1970년에 이어 1992년 제8차 임신보에 이르기까지 족보를 8차례 증보하는 등 꾸준히 족보를 유지, 개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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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판 앞면과 4판 앞면이다.  
연산 서씨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우선 한말 독립운동가 서승태 선생이 연산 서씨다. 일농 서승태 선생은 의병들의 군량을 조달했고 광천에 덕명학교(현 덕명초등학교) 를 설립하는 등 육영사업에 헌신했다. 홍주의병장 서기환 선생도 연산 서씨다. 서기환 선생은 1906년 홍주성 전투에 참가했다가 순절했다고 한다.
 
도민리포터도 석보라는 것을 처음 접하는 일이어서 놀랍고도 신기했다.
가문의 혈통과 함께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가풍, 혈족의 위상과 그 존엄성을 지키고자 석판에 족보를 새겨 보관했을 정도의 시대정신이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충청도 양반들의 품격중 하나였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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