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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현충일에 찾은 이충무공 묘소

2016.06.07(화) 10:12:55 | 계룡산 (이메일주소:ccy6645@hanmail.net
               	ccy664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현충일이다.
현충일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독립을 위해, 평화를 위해 수많은 순국선열들과 국군장병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살기좋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현충일 뿐 아니라 우리는 항상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감사하며 빚진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현충일을 맞아 아산시 음봉면에 위치한 이충무공 묘소를 찾았다.
생각보다 찾아오는 참배객은 많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내려 묘소입구에 들어서면 울창한 송림과 신록이 상쾌함을 더해 주고, 홍살문 사이로 이충무공 묘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충무공 신도비. 왼쪽은 충무공의 5대손 충민공 이봉상 신도비
▲ 이충무공 신도비. 왼쪽은 충무공의 5대손 충민공 이봉상 신도비 
이충무공 신도비
▲ 이충무공 신도비

묘역 입구의 안내도
▲ 묘역 입구의 안내도 
잘 정돈된 묘역 입구
▲ 잘 정돈된 묘역 입구 
홍살문 사이로 이충무공 묘역이 보인다.
▲ 홍살문 사이로 이충무공 묘역이 보인다. 
오른쪽 연못에 수련이 피어있고 중앙의 소나무도 일품이다.
▲ 오른쪽 연못에 수련이 피어있고 중앙의 소나무도 일품이다.  
안내판과 비석 너머로 보이는 이충무공 묘소.
▲ 안내판과 비석 너머로 보이는 이충무공 묘소.   안내판 옆으로 소나무 사잇길이 나온다.

현충일에찾은이충무공묘소 1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소나무.
▲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소나무. 장군을 향해 절하는 모습이다. 

묘소 안내판 옆으로 잘 다듬어진 아름드리 소나무 사잇길을 따라 오르면 정성껏 단장된 묘소에 이른다. 묘소 상석위에는 조그만 꽃바구니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둥근 둘레석 위의 봉분과 곡담(곡장), 묘비, 상석, 장군석, 동자석이 푸른 잔디위에 조화롭게 서서 묘역을 지키고 있다.

현충일에찾은이충무공묘소 2
 
현충일에찾은이충무공묘소 3 
현충일에찾은이충무공묘소 4 
묘소에는 낮으막한 곡담이 둘러쳐져 있다.
▲ 묘소에는 낮으막한 곡담이 둘러쳐져 있다.

조용하던 묘역에 참배객들이 찾아왔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평택시지회의 회원 30여명이 현충일을 맞아 이충무공 묘소를 찾아온 것이다.
 
김연구 평택시지회장을 비롯한 일행은 합동 참배 후 묘역을 돌아보며 장군의 위대한 업적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명복을 빌었다.

현충일에찾은이충무공묘소 5

현충사에는 대부분 많은 국민들이 다녀가지만 현충사에서 불과 10여키로 불과한 거리에 위치한 이충무공 묘역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묘역을 찾는 참배객도 많지 않다는 결론이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평택시지회 회원들의 묘소 참배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평택시지회 회원들의 묘소 참배

 
솔향기 그윽한 정원같은 묘역과 걷기좋은 그림같은 길, 그 곳에서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더불어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가꾸어진 잔디와 노송의 조화
▲ 잘 가꾸어진 잔디와 노송의 조화
현충일에찾은이충무공묘소 6 
충무공 묘소에서 양 옆을 바라보면 노송의 자태가 가히 장관이다.
▲ 충무공 묘소에서 양 옆을 바라보면 노송의 자태가 가히 장관이다.
현충일에찾은이충무공묘소 7 
현충일에찾은이충무공묘소 8 
현충일에찾은이충무공묘소 9

이충무공 묘소(사적 제112호)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1545년 4월28일 서울에서 출생하셨으며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 통제사로서 거북선을 창제하여 옥포, 당포, 당항포, 한산도 앞바다와 부산, 명량, 고금도등 해전에서 왜선 수백척과 왜병 수만명을 무찔러 나라와 겨레를 구하셨다. 이충무공은 노량해전에서 적군을 추격중 적의 유탄에 맞아 54세를 일기로 1598년 11월 19일 남해 해상 관음포에서 전사하셨다. 장군의 묘소는 처음 아산시 금성산에 모셨다가 광해6년(1614년) 이곳 어라산으로 옮겨 모셨다.
이충무공 묘소는 1959년 5월 22일 사적 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묘는 충무공의 배위인 상주방씨와의 합장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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