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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시험문제만 풀이하는 학교, 우민화교육 아닌가?

2015.07.14(화) 06:31:28 | 교육이야기 (이메일주소:kyongt@naver.com
               	kyongt@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학교엔 진정 배움이 있습니까.“
 
진주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다운 학생이 학교를 향한 저항이다.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다"며 학교를 뛰쳐나와 학교 앞에서 20여일동안이나 1인 시위를 하던 김다운양.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자식의 재능은 무시한 채 1등만을 강요하는 부모님께, 1등만을 강요하게 만들고 제대로 된 교육은 실시하지 않는 국가에게, 주입식 교육으로 학생들의 사고를 굳히면서 창의적 인재 운운하는 학교와 국가의 모순을 고발한다."고 썼다. 

김다운 학생의 고발을 교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을 양육하는 이땅의 부모들, 내일의 주인공이 될 2세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교육학자들 그리고 내일의 주인공을 길러내야할 책임을 진 교육당국은 어떤 반응일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부끄러운 마음일까?’ 아니면 “참 당돌한 녀석이구나, 지금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고 뭐야? 괜히 공부하기 싫으니까 핑계를 대고 자퇴하려는 게지?” 이렇게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묵살하고 말까?
 
똑같은 현상이라도 보는 위치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학교가 무너졌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가 무너졌다는데 무너진 학교를 왜 살릴 생각을 안 할까? 학교가 무너진게 맞다면 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 35만 교사들은 무엇이가? 또 무너진 학교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고 있는 감독관청이나 교육부는 또 무얼 하는 곳인가? 부모들은 무너진 학교에, 배울 게 없는 학교에 왜 그렇게 보내지 못해 안달일까?
 
학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삶을 준비하는 곳이다. 김다운 학생이 ‘학교에 배울게 없다’고 단정하고 뛰쳐나온 이유는 학교가 내 삶을 안내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로 살아갈 학생들이, 화가가 되고 싶은 학생이, 가수가 되고 싶은 학생,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은 학생.... 그런 꿈을 꾸고 있는 학생에게 학교는 죽기 살기로 국·영·수 문제풀이로 날밤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김다운 학생의 눈에는 보이는데 학부모나 교육자들의 눈에는 왜 이런 현실이 보이지 않을까?
 
‘어떤 보험이 내게 반드시 필요한가?’
‘어떤 종류의 은행계좌를 개설해야 편리하게, 싼 이자로 이용할 수 있을까?’
‘불필요한 계약을 해지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까?’
 
독일교육이야기의 저자 박성숙씨가 한국교육신문에 쓴 글에 나오는 얘기다. 원론만 가르치고 현실을 가르치지 않은 교육은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이제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들이 살아갈 세상에 필요한 지식과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치겠다는 소식이다.
 
당장 졸업하면 이력서 한 장도 쓸 수 있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 내가 왜 사는지...?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내 부모가 우리문화와 역사가 왜 소중한지...?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정의란 무엇이며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민주주의가 왜 소중한지..... ?

지식교육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실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있고 체험을 통해 얻을 지식이 따로 있다. 모든 지식을 무조건 많이 외워 암기한 량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 매긴다는 것은 무지 몽매한 짓이다. ‘안다는 것’은 아는 것으로 끝나면 그 앎의 가치란 무용지물이다. 배움이 없는 학교, 깨달음을 주지 못하는 교육... 도대체 학교가 기르겠다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들의 타고난 소질과 적성을 길러내기는커녕, 천부적인 재능까지도 국·영·수 문제풀이로 허비해 버리는 교육은 착한바보를 만드는 식민지시대 교육을 연상케 한다. 독재자들이 필요한 인간, 자본이 필요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오늘날 교육자들은 진정한 민주교육을 하고 있는가?

경기도에서는 ‘학교는 왜 다녀야 하나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왜 태어 났을가요?’ ‘내 꿈은 무엇일까요?’... 와 같은 내용이 담긴 철학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비록 선택과목이기는 하지만 삶을 안내하는 교육, 독일처럼 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하겠다는 혁신학교가 있어 무너진 교육에 한 가닥 서광이 비치고 있다. 왜 다른 지자체에서는 이런 교육을 할 수 없을까? 자녀에게 부끄러운 부모, 제자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교육자... 이제 다시는 학생들로부터 “여러분의 학교엔 진정 배움이 있습니까.”라는 질책을 받는 부끄러운 일이 없는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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