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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문방사우의 무덤, 대한민국 최초의 '퇴필총'

60여년 붓글씨만 써온 서산의 원양희 선생, 붓 먹 벼루 습작지 4트럭분을 땅에 묻고 비석까지...

2014.12.04(목) 12:33:13 | 내사랑 충청도 (이메일주소:dbghksrnjs6874@hanmail.net
               	dbghksrnjs687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농촌에 살고, 농사도 지으면서 밖의 날씨가 어떤지 부인에게 묻곤 했어요. 볏논에 모는 심었는지, 볏 나락이 잘 익고 있는지, 그리고 가을에는 잘 수확했는지도 부인에게 묻고서야 알았어요. 하루 왼종일 이 방에서 붓글씨를 쓰느라 문 밖엘 나가지 않았으니 그랬지요. 평생을. 부인에게는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하지만 글씨가 좋은걸 어떡해요”
 
농사짓는 사람이 바깥 날씨가 어떤지 아내에게 묻고서야 알았다는 분.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의 원양희 선생님.

정말 어지간(?)하십니다.

그렇게 평생을 붓글씨만 쓰다가 그 붓과 벼루와 먹과 습작지를 그냥 버리는건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평생 작품 활동을 하면서 써 온 많은 종이와 다 닳은 붓 등은 선생님의 분신과도 같기 때문에 그냥 버리기보다는 정중히 묻어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것을 땅에 묻어 무덤을 만들어 주고 비석도 세워주었습니다.

이름하여 ‘퇴필총(退筆塚).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의 원양희 선생님의 자택.

▲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의 원양희 선생님의 자택.


듣는 이 처음이고,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서산에서 퇴필총 행사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그 행사 당일에는 시간이 여의치 못해 행사 직후에 찾아가서 주인공 선생님을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퇴필총 행사 당시 사진을 서산시청과 지곡면사무소를 통해 구할수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퇴필총이라는 문방사우(文房四友)의 무덤.
먼저 행사 당시 사진부터 생생하게 보겠습니다.
 

퇴필총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 퇴필총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퇴필총에 묻힐 붓들이 수북합니다.

▲ 퇴필총에 묻힐 붓들이 수북합니다.

깊게 판 땅에 붓, 먹, 벼루, 습작지를 넣는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 깊게 판 땅에 붓, 먹, 벼루, 습작지를 넣는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문방사우의무덤대한민국최초의퇴필총 1

이제 하관식입니다.

▲ 이제 붓통을 내려놓으면서 하관식을 진행중입니다.

문방사우의무덤대한민국최초의퇴필총 2

붓통 위에 퇴필총이라는 관을 싼 천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 붓통 위에 퇴필총이라는 관을 싼 천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참석자들이 흙을 덮는 의식을 진행중입니다.

▲ 참석자들이 흙을 덮는 의식을 진행중입니다.

봉분까지 다 쌓은 후 제막식을 진행합니다.

▲ 봉분까지 다 쌓은 후 제막식을 진행합니다.

붓 모양의 석등과 퇴필총 비석, 그리고 봉분이 다 완겅된 퇴필총의 모습입니다.

▲ 붓 모양의 석등과 퇴필총 비석, 그리고 봉분이 다 완성된 퇴필총의 모습입니다.

마무리 된 퇴필총 앞에 원양희 선생님께서 포즈를 취해 주셨습니다.

▲ 마무리 된 퇴필총 앞에 원양희 선생님께서 포즈를 취해 주셨습니다.


퇴필총은 지난 11월 11일 오전 11시 11분에 지곡면 장현리 원양희 선생님의 선산에서 조성 행사를 열었답니다.
가로 5m ,세로 3m,깊이 3m의 무덤 안에 원선생님이 그동안 수십여년 작품 활동을 하면서 사용한 붓 821자루, 습작품 40만점, 서예작품 3만점, 먹물통 4천여개 등이 묻혔습니다.
이 물건들의 양이 모두 작은 트럭 4대분이었다고 하니 가히 그 양이 짐작이 갑니다.
기념비 제막식, 하관식, 봉분식 순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서산지역 기관 단체장과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행사 시각이 11월 11일 오전 11시 11분인 이유는 붓의 모양이 1자이기에 그 의미에 맞춘거라 합니다.
  
평생 쓴 글씨와 습작(習作)지들이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채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퇴필총 주변의 초목도 모두 숨 죽이고 지켜보는 순간.
참석한 사람들 모두 의관을 갖추고 예를 다해 행사에 임했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이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듯, 거의 사람만큼 평생을 같이 한 한 서예가의 혼이 담긴 작품들이기에 일종의 존엄한 경외감을 갖게 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어떠세요. 신기, 진귀, 희귀하고 놀랍지 않으세요?
요즘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오로지 취직과 과학, 자연계 분야에만 너무 집착을 한 덕분에 인문학이 소홀해서 걱정이라고들 하는데 퇴필총을 취재하면서 이 의식 자체가 진정한 인문학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퇴필총은 중국 남조 진나라 때의 승려 ‘지영’이라는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유명한 왕희지의 7대손이라죠. 반야와 법화등 경전에 정통했는데 서예에도 아주 능했다고 해요. 특히 초서에 뛰어났는데 그 글씨체가 워낙 대단해서 주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글씨를 얻으려고 천 리 길을 멀다 않고 찾아와서 문지방이 닿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글씨를 쓰는 것이 도에 방해가 된다 하여 글씨를 공부하면서 썼던 붓과 서첩을 죄다 모아 묻었다고 합니다. 이를 퇴필총(退筆塚)이라 부르고 다시는 글씨를 쓰지 않았다지요”
 
원양희 선생님이 알려주신 퇴필총의 원조입니다.
그래서 이번 퇴필총 행사는 역대 이래 세계에서 두 번째, 대한민국에서는 처음 있는 행사로 기록되는 일이었습니다.

농민이면서 서예가인 필보 원양희 선생님은 올해 연세가 77세. 어릴적 아버님이 한문 교사였던 덕분에 일찍 서예를 가까이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10살때부터 붓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생을 쓴 붓글씨이지만 한번도 어떤 서예 대회에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내가 듣기로는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서예대회만 자그만치 280개가 넘어요. 그거 전부다 정형화 된 글씨, 마음에서 우러나는 글씨가 아니라 상을 받기 위해 심사위원의 눈에 들어야 하는 글씨, 그래서 죽은 글씨라고 여겨 그런 대회에 나가서 실력을 겨룬적이 없습니다”

원선생님께서는 서예대회의 심사위원들이 자기 기준대로 가지고 있는 글씨의 기법만 다 합해도 수만가지가 될거라고 합니다. 거기에 맞춰 적요이키고, 그 안에 들게 만든다는게 넌센스라 하십니다.
 

원양희 선생님의 습작실

▲ 원양희 선생님의 습작실

직접 쓴 글씨를 읽어주며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 직접 쓴 글씨를 읽어주며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일목삼색'

▲ '일목삼색'

 
이곳이 평생 글씨를 쓰셨던 방입니다.
이 방 전체가 문방사우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번에 퇴필총 행사때 모두 다 묻어 주어서 지금은 텅 빈 것이라 합니다.
 
“이 방에는 달력도 없고 시계도 없어요. 오로지 글씨 쓰는 것들만 있어요.”
원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둘러 보았더니 정말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그것들이 보이지 않더군요.
‘이분은 선계(仙界)에서 오신 분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병풍처럼 세워져 있는 습작품들.

▲ 병풍처럼 세워져 있는 습작품들.

지금도 쓰고 계신 붓들.

▲ 지금도 쓰고 계신 붓들.

퇴필총의 의의와 평생 붓글씨와 함께한 인생을 설명래 주시는 원선생님

▲ 퇴필총의 의의와 평생 붓글씨와 함께한 인생을 설명해 주시는 원선생님

이 손가락. 평생 붓을 잡은 탓에 송가락은 항상 자연스럽게 붓을 잡은 모양으로 접힌다고 합니다.

▲ 이 손가락. 평생 붓을 잡은 탓에 손가락은 항상 자연스럽게 붓을 잡은 모양으로 접힌다고 합니다.


원선생님의 호는 우보(牛步).
소처럼 천천히 걷고 생각하며 살자는 뜻에서 지은거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천천이 걷고 생각하며 써 온 글씨였어도, 잠자고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온종일 붓글씨만 써온 평생동안 단 한번도 마음에 드는 글씨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보의 발걸음으로 붓을 잡은 77세 인생 동안 방 안 묵향으로만 가득한 삶은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뛰어오르려고만 하는 우리에게 남겨주는 바가 참으로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퇴필총 답사와 더불어 원선생님의 습작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내내 깊고도 그윽한 묵향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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