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선조들의 기호학파를 공부 하면서 '뇌' 정화

충남역사박물관에서 조선 중기 기호학파 학풍과 학자들의 정신적 본류 탐구

2014.07.10(목) 12:26:06 | 이종섭 (이메일주소:dslskj55@hanmail.net
               	dslskj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학파라는게 있습니다. “누구로부터 사사 받았다” “아무개의 제자다”하는 식의...

학파는 어떤 학문 분야에서 이론적 기틀을 잡는 동시에 그 학풍의 중요한 본류를 제시하면서 학술적 흐름과 방향을 설정하기도 하는, 당대에는 해당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절대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학문적 기반이 결국 백성들에게 잘 먹이고 잘 입게 하자는 치세의 근간을 이루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게 하자는 인류애적인 정신적 가르침의 준거를 만들어 놓았으니 선조들의 학문적 업적은 어늘날 우리 삶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이지요.
 

충남역사 박물관 전경

▲ 충남역사 박물관 전경


기호학파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학술적으로는 이이의 학설을 따르는 주기적(主氣的) 경향의 성리학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주기파라고도 말합니다.

주기론자들은 대부분 기호지방(충청, 호남, 경기 등 일원)에 거주했으므로 기호학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공주에 있는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는 현재 충청지역 출신이거나 이곳에서 태어나 학문적 업적을 이룬 기호학파 선조들의 문집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문집 내용을 직접 펼쳐볼 수는 없더라도 당대 학문의 거두들이 직접 쓰고 만든 서책들을 보면서 후학으로서 그분들의 학문적 혼을 조금이라도 느껴볼수 있었습니다.

기호학파 소개부터 할까요.
16세기에 형성된 기호학파는 신분제의 문란과 지주제의 전개에 따른 중세사회의 동요를 해결하여 국가를 재건하자는 것이 주류를 이뤘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에 맞추다 보니 실천적인 면을 중요시하여 현실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경세론이 제기되었다죠. 조헌, 김상헌, 김장생, 송시열, 송익필, 권상하, 김창집 등 기호 지방에 살던 서인(西人)들로 이루어졌으며, 이황의 영남학파와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1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2


사계 김장생의 유고집과 문인록입니다.
사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학자인데 예학(禮學)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으며, 예학론은 전란 이후 혼란해진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사회질서를 유지하자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는 예와 효의 관계에서 “예가 아닌 것은 효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라고 설명하면서 효를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또한 관혼상제를 중시하여 관혼상제는 가정에서의 모든 행위의 기본이라 말하고 그중 어느것 하나라도 이행치 않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합니다.

임진왜란 때는 호조정랑으로서 군량 조달에 공을 세웠고 1602년에 청백리에 뽑히기도 했지만 나중에 북인(北人)이 득세하게 되자 1605년 벼슬을 버리고 충청남도 연산으로 낙향해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썼고 이곳에서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합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3


신독재 김집의 유고집입니다.
김집은 바로 위에서 적은 김장생의 아들이죠. 아버지와 함께 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비했으며, 그의 학문을 송시열에게 전해주어 기호학파를 형성케 했습니다.
18세에 과거에 합격했는데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여 한때 벼슬에서 물러나기도 했지만 이후 인조반정 뒤 다시 등용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김장생의 예학을 이어 예에 대한 최고의 정통성을 확보했다 합니다. 그래서 당시에 그의 예학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고 하네요. 그 아래에서 송시열, 유계 등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고 연산 돈암서원에 제향되었습니다. 저서로 ‘신독재유고’와 ‘의례문해속’이 있습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4


우계 성혼의 문집입니다.
그는 문인이자 시인이었고 사상가, 정치가였죠. 진사시에 합격한 후 관직에 출사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인 광해군을 모셨는데 영의정 유성룡과 함께 주화론을 주장한 일이 문제되어 매국노로 낙인찍혀 정계에서 은퇴합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세자인 광해군의 부름을 받아 그를 돕고 평양에 올라가 선조를 만났으나, 왜란 초 선조가 피난할 때 임금이 행차하는 길목에 살면서도 호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을때까지 반대파들로부터 공박을 당했음은 물론, 죽은 후에까지 동인들과 남인들의 공격을 받았다죠.
학문적으로는 조광조의 학통을 이어 성리학 연구와 제자들을 길러내는데 주력하였는데, 조헌, 정철, 윤황, 김자점 등이 그의 문하생들이라 합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5


율곡의 문집입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은 분이라서 짧게 소개할게요.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한 후, 아버지가 계모 권씨를 들이자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훗날 그가 죽은 후에까지도 머리 깎고 중이 되려다가 환속한 자라고 동인과 남인이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는군요.
공납의 폐단 시정책인 대공수미법 실시를 주장하고, 병조판서로서 여진족을 격퇴한 후, 10만 양병설을 주장해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6


시남 유계의 문집입니다.
이이와 김장생의 학통을 잇는 서인 학자였습니다. 성리학에 밝았고 특히 예론에 정통했다고 하네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상헌과 함께 척화를 주장하다가, 이듬해 화의가 이루어지자 척화죄로 임천에 유배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주로 가례(家禮)에 대한 여러 경전과 예서를 바탕으로 ‘가례원류’를 지었습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7


남당 한원진 문집입니다.
송시열의 학통을 이어 정통 주자학의 입장을 충실히 계승·발전시킨 분입니다. 그는 송시열의 학문과 실천을 계승하기 위해 이기심성(理氣心性)의 문제를 집중 연구했는데 특히 인성과 물성은 동일한 것이며 인간의 마음은 지극히 선하다고 주장하여 낙론(洛論)을 주장했다 합니다. 상당히 철학적이죠.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8


전재 임헌회 연보입니다.
그는 낙론(洛論) 계열로 이이와 송시열의 학통을 계승하여 주기론을 주장했습니다. 문집으로는 전재집, 고산집 등이 있답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9


송시열의 언행을 적은 송자언행록입니다.
우리나라 유교 주자학의 대가이자 당색으로는 서인, 분당 후에는 노론의 영수였죠. 효종, 현종 두 국왕의 왕자 시절 가르친 스승이었으며 관직도 영의정까지 올랐습니다.
예송 논쟁 때 그는 주자가례에 의하여 효종이 인조의 차남이었으므로, 계모인 자의대비는 차남의 예에 따라 상복은 기년복을 입어야 된다고 하였다가, 남인과 오래 시비가 붙기도 했습니다.

기사환국으로 제주도에 유배됐으나 숙종 때 장희빈의 아들 원자 균을 세자로 지정하는 문제를 반대하다가 숙종의 진노와 남인의 사주로 국문을 받으러 오던 중 전라북도 정읍에서 사사됐습니다. 하지만 그를 평소 존경하던 정조에 의해 성인(聖人)으로 추숭되어 추후 국가의 스승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10


의례문해입니다.
사계 김장생이 예(禮)의 의문나는 점을 풀이하여 정리한 책이죠.
내용은 대부분 예서(禮書)에 실려 있지 않은 변례(變禮)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사회질서를 확립하고자 고금의 예서를 참고하고 당시의 풍속과 인정(人情)에 맞추어 쓴 것입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11


삼례의(三禮儀)입니다.
박세채의 저서입니다. 조선 후기 예학자들의 규범은 주자가례였지만 가례를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시행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았기에 17세기 이래 가례의 정신을 살리고 우리의 풍속에도 맞는 의례를 시행하기 위해 예서의 편찬노력이 계속되었던 바 이 책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면 될득 합니다.

 

선조들의기호학파를공부하면서뇌정화 12


상례비요(喪禮備要)입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신의경이 쓴 책인데 가례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계몽하기 위해서 펴낸 것으로, 주자가례의 원문을 위주로 하고 고금의 가례에 대한 제설을 참고하여 일반이 쓰기에 편리하도록 서술한 상례에 관한 초보적 지침서라죠.


이상 충남역사박물관에 전시중인 충청도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들의 학풍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의 정신적 사상의 배경과 본류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뇌’ 정화좀 하셨을 줄로 압니다.

 

이종섭님의 다른 기사 보기

[이종섭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