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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당신의 숭고한 의거에 최고 존엄을 표합니다

보훈청에서 발표한 충청남도내 '이달의 현충시설 [1]' 예산 충의사

2014.02.12(수) 11:01:16 | 내사랑 충청도 (이메일주소:dbghksrnjs6874@hanmail.net
               	dbghksrnjs687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내 보훈시설은 대전지방보훈청에서 관할합니다.
대전지방보훈지청에서는 매달 충청남도내 보훈시설중 ‘이달의 현충시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데 저는 작년도에 발표된 충청남도내 이달의 현충시설과 금년도에 매달 발표하는 현충시설을 찾아 보며 나라사랑의 표본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로 얼마전 다녀온 예산의 윤봉길 의사 사당인 ‘충의사’ 기사를 써 봅니다.
충의사는 대전지방보훈청에서 2013년 4월에 충청남도 이달의 현충시설로 선정한 곳입니다.

윤봉길의사는 1908년 지금의 충의사가 있는 곳 길 건너편 시량리에서 5남 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23세이던 1930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뜻을 펼치고자 하였고 1932년 중국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일제의 전승기념 축하식때 도시락 폭탄을 투척, 우리 민족을 짓밟는 일제 앞잡이들을 폭사시키는 거사에 성공하고 그들에 의해 체포돼 그해에 일본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윤의사를 기리는 사당인 충의사

▲ 윤의사를 기리는 사당인 충의사


영정과 향로

▲ 영정과 향로


의기의 20대 청년 윤봉길 의사 영정

▲ 의기의 20대 청년 윤봉길 의사 영정


윤봉길 의사의 뜻과 얼을 기리고자 건립한 충의사는 총 부지면적 14만 7802㎡에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인 충의사와 광현당, 저한당, 부흥원, 어록탑 및 기념관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정문을 들어서 우측에 사당 본전인 충의사가 있습니다.
 
사당은 여느 사당과 크게 다르지 않게 외삼문과 내삼문이 있고 이곳을 지나면 충의사 건물이 나옵니다.
충의사 입구에는 향로와 향이 놓여있어 향 연기가 본전안을 휘돌아 하늘로 올라갑니다. 잠깐동안 깊은 묵념을 드리며 내 나라, 내 조국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의사의 숭고한 넋을 기려봅니다.
충의사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준공식 때 쓴것이라고 합니다.
 
충의사를 지나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에 연못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분수를 내뿜는 곳입니다.
 

멀리 보이는 윤의사의 부인이신 배용순 여사 묘소

▲ 멀리 보이는 윤의사의 부인이신 배용순 여사 묘소


배용순 여사 묘소

▲ 배용순 여사 묘소


그리고 그 분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야트막한 산을 오르면 윤봉길 의사의 부인이셨던 배용순 여사의 묘소가 있습니다.
여기서도 깊은 묵념을 드립니다.
 
이젠 배용순 여사의 묘소 참배를 마치고 윤봉길의사 기념관에 갈 차례입니다.

기념관

▲ 기념관


기념관 입구 사진 안내문

▲ 기념관 입구 사진 안내문
 

기념관 내부

▲ 기념관 내부
 

의사께서 김구 선생 앞에서 결의하는 모습

▲ 의사께서 김구 선생 앞에서 결의하는 모습


윤의사께서 사용한 도시락 폭탄

▲ 윤의사께서 사용한 도시락 폭탄


홍커우 의거후 우왕좌왕 하는 연단의 일제 군경

▲ 홍커우 의거후 우왕좌왕 하는 연단의 일제 군경


홍커우 의거후 연행되는 사진

▲ 홍커우 의거후 연행되는 사진


홍커우 의거를 보도한 동아일보 호외와 차이나 신문

▲ 홍커우 의거를 보도한 동아일보 호외와 차이나 신문


일제의 사형집행을 결정한 군법회의 판결문

▲ 일제의 사형집행을 결정한 군법회의 판결문


일제의 사형집행 문서

▲ 일제의 사형집행 문서


의사께서 순국 직전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

▲ 의사께서 순국 직전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


윤의사의 순국 사실을 알린 북국신문 기사

▲ 윤의사의 순국 사실을 알린 북국신문 기사
 

순국 당시 의사게서 묶였던 형틀대

▲ 순국 당시 의사게서 묶였던 형틀대
 

윤의사께서 의거 전 중국 장제스와 함께 찍은 사진과 서한문

▲ 윤의사께서 의거 전 중국 장제스와 함께 찍은 사진과 서한문
 

관람객들이 나라사랑의 의미를 적어 놓은 소지문

▲ 관람객들이 나라사랑의 의미를 적어 놓은 소지문


기념관은 427평 규모인데 2001년 현대식 건축양식에 한옥기와를 얹어 전통미를 가미하고 전시관 내부는 첨단 영상복합모형을 활용해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옆에는 저한당과 광현당이 있습니다.
 
 

윤의사가 태어나신 광현당

▲ 윤의사가 태어나신 광현당


광현당은 '빛이 타는 곳'이란 뜻으로 윤 의사가 태어난 생가입니다.
 

저한당

▲ 저한당
 

의사께서 사용하신 놋쇠 그릇

▲ 의사께서 사용하신 놋쇠 그릇


그 옆에 윤의사가 성장한 저한당이 있으며, 부흥원은 윤 의사가 21세에 창설해 야학회, 월진회 등의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어록탑

▲ 어록탑


'매헌 윤봉길 의사 어록비'는 의사의 어록과 주변 지인, 유명인사들의 어록을 함께 새긴 탑으로 2000년 월진회에서 건립했습니다.
 
이때가 선생의 나이 겨우 25세. 지금으로 환산한다면 겨우 군대를 막 제대할 나이 정도에 조국을 위해 한목숨 숭고하게 바친것입니다.
 

윤봉길 의사 사적비

▲ 윤봉길 의사 사적비


홍코우 의거 기념 윤봉길의사상

▲ 홍코우 의거 기념 윤봉길의사상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고 발전된 조국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귀기울여 들어보니 겨울 철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뒷산 어디에선가 구슬프게 우는 새소리가 나라 잃은 울분을 참지 못해 폭탄을 들고 꽃다운 나이에 저들의 심장부로 향했던 윤의사의 장엄한 영혼을 달래줍니다.
 
우리 주변에는 국난을 극복하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신 선열들을 기리기 위한 각종 보훈 시설이 윤봉길 의사 사적지 외에도 여기저기 많습니다.
유난히 많은 외침을 당해왔기에 그런 시설이 또한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충청남도에도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6.25동란 등을 거치면서 구국의 일념으로 나섰던 위대한 분들을 기리기 위한 사당, 기념관, 보훈탑 등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다 아는 현충시설이고, 또한 웬만한 사람은 한두번씩 다 가보았을 시설이죠.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러나 보훈청에서 그렇게 매달 ‘이달의 현충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를 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항상 잊고 사는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에게 뚜렷한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미 다 아는 시설, 다 가본 곳, 역사책과 신문에서 다 봐서 아는 인물들과 사건이라 해도 한번 더 되새겨 보고자 하는게 큰 의미인 것입니다.
 
충의사를 돌아 나오면서 다시한번 나라사랑과 윤의사의 영정을 더 바라봅니다.
울컥 하는 마음이 솟습니다.
부디 부디.... 나라를 빼앗길 일 없는 먼 곳에서 편히 쉬소서.
이 나라는 저희들이 잘 지켜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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