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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온양 민속박물관에서 전통 탈(탈춤) 완전 대해부

집의 자녀들과 주변 조카, 친척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세요

2013.12.24(화) 00:07:10 | 최순옥 (이메일주소:didrnlwk55@hanmail.net
               	didrnlwk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엄마, 양주 별산대 놀이가 뭐예요?”

우리 아이들이 어릴적 했던 질문인데 그때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할수 없었던 무지함 때문에 당황했던 기억 생생합니다.
그럼 지금은 잘 알고 있을까요? 부끄럽지만 사실 지금도 훌륭하게 대답해 줄 수준은 못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봉산탈춤, 하회탈춤은 물론이고 광대놀이, 산대놀이 등등... 무척 많이 듣고 접하는건데 막상 설명은 안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비슷할거라 생각합니다.
 
모두 다 소중한 우리의 전통문화이고 무형문화재들인데 그 설명뿐만 아니라 머리에 쓰는 탈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이건 하회탈이야”라거나 “응, 이건 봉산탈춤에 쓰는거야”라고 딱 짚어 말할수도 없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

▲ 온양민속박물관

 

온양 민속박물관 설립자 김원대 선생님

▲ 온양 민속박물관 설립자 김원대 선생님


 

전시실 내부

▲ 전시실 내부

 

탈춤이란...

▲ 탈춤이란...


 그래서 오늘은 제가 이런 소중한 자원을 모두 구비하고 전시중인 온양 민속박물에서 우리나라 전통 탈춤에 관한 모든 탈의 종류와 함께 탈춤의 대략적인 소개를 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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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원 산대놀이


<1> 퇴계원 산대놀이
'산대(山臺)'란, 산과 같이 높은 무대 또는 비단으로 장식된 다락무대라는 뜻으로, 고려 때 성행하던 잡극이 조선으로 계승되어 산대도감에서 이를 관장했다고 하네요. 주로 명, 청의 사신을 영접하거나 왕실의 각종 제례, 잔치 등 국가적 차원의 여흥 행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후기 왕실에서 이를 폐지하자 연희자들이 호구지책으로 아현(애오개)을 중심으로 사대문 밖 장터인 서울의 녹번, 구파발, 퇴계원과 노량진, 송파 쪽과 양주에서 공연하면서 민간에 확산 됐다네요.

이후 양주와 송파, 퇴계원이 서로 교류하면서 산대놀이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양주별산대놀이의 놀이꾼들을 불러 합동공연을 하는 한편 송파산대놀이꾼들도 함께 공연하면서 교감을 나눴다고 합니다.

 

양주 별산대놀이

▲ 양주 별산대놀이


<2> 양주 별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 경기지방에서 즐겼던 극의 한 갈래로 춤과 무언극, 덕담과 익살이 어우러진 민중 놀이입니다. 이 놀이는 약 200년 전부터 사월초파일, 단오, 추석 등 크고 작은 명절과 비가 오길 기원하는 기우제 행사 때에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양주 고을 사람들이 한양의‘사직골 딱딱이패’를 초청하여 놀다가 그들이 지방공연 관계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많아지자 고을 사람들이 직접 탈을 만들어 놀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그 유래가 참 재미있네요.

놀이는 전체 8과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부지방 탈춤을 대표하는 놀이이면서 대한한국 가면극의 중심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송파 산대놀이

▲ 송파 산대놀이


<3> 송파 산대놀이
송파마을은 경기일원의 상업근거지로, 약 200년전 송파장이 가장 번성하던 때에 산대놀이가 성행하여 오늘날까지 전하는 놀이형태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송파산대놀이는 전체 7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이에 앞서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하고, 가면을 배열해 놓고 고사를 지냅니다.

놀이내용의 구성이나 과장, 춤, 탈 등이 양주별산대놀이와 거의 비슷합니다. 소나무껍질, 종이 등으로 만든 탈 33개가 사용되며, 놀이형태는 다른 탈춤과 마찬가지로 춤이 주가 되고 재담과 동작이 곁들여진다네요.
 
 

봉산탈춤

▲ 봉산탈춤


<4> 봉산탈춤
탈춤이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리고 다른 인물, 동물 또는 초자연적 존재(신) 등으로 분장한 후 음악에 맞추어 춤과 대사로써 연극하는 것을 말합니다.

탈춤은 말 그대로 가면놀이죠. 봉산탈춤은 약 200년전부터 매년 단오와 하지날 밤에 행해졌답니다. 놀이는 7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민들의 가난한 삶과 양반에 대한 풍자,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일부다처제로 인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횡포를 보여줍니다.

봉산탈춤은 해서, 즉 황해도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온 해서탈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탈춤으로, 다른 탈춤에 비해 춤사위가 활발하며 경쾌하게 휘뿌리는 장삼 소매와 한삼의 움직임이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강령탈춤

▲ 강령탈춤


<5> 강령탈춤
강령탈춤은 매년 단오에 행해지는데 사자춤, 말뚝이춤, 상좌춤, 양반과 말뚝이춤의 7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놀이에 앞서 탈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한답니다. 등장인물은 마부, 사자, 원숭이, 말뚝이 등 모두 20명인데 춤은 느린 사위로 장삼소매를 고개 너머로 휘두르는 장삼춤이 주가 된다고 하네요.

강령탈춤의 내용 중에서 양반 3형제가 나와 양반의 근본을 찾고 말뚝이를 부르거나 말뚝이가 재담하는 과장은 경남의 오광대와 비슷하고, 할미광대가 물레를 돌리는 장면은 가산오광대와 매우 유사한데, 이러한 유사점은 탈춤의 전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은율탈춤

▲ 은율탈춤


<6> 은율탈춤
은율탈춤은 단오에 2∼3일 동안 행해지고 그 밖에 석가탄신일과 7월 백중놀이로도 행해진 놀이입니다. 약 200∼300년 전에 난리를 피하기 위하여 섬으로 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얼굴을 내놓기가 부끄러워 탈을 쓴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극 내용중 양반에 대한 모욕, 일부처첩(一夫妻妾)의 삼각관계와 서민생활상을 보여주는데 다른 탈춤에 비해 호색적인 표현이 심하며, 파계승보다 양반을 모욕하는 대목을 강조하고 있다네요.

 

하회 별신굿놀이

▲ 하회 별신굿놀이


 
<7> 하회 별신굿놀이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들에 의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탈춤입니다. 정월 초이튿날에서 보름 사이에 주민들이 병을 앓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기를 기원하며 서낭신을 위안하는 부락제를 마친 후 벌이는 가면극이죠.

이 부락제는 반드시 마을 주민들이 지내게 되어 있는데, 서낭신이 대제를 원하는 경우, 10년마다 주민들이 대제를 지내지 않으면 서낭신이 벌을 내려 병자가 생길까봐 드린다고 합니다.
 
 

수영들놀음

▲ 수영들놀음


<8> 수영들놀음
수영동은 옛 경상도 좌수영의 본거지로서 여러 가지 예능이 발달했다고 하네요. 수영들놀음은 정월 3, 4일경부터 지신밟기를 하면서 기금을 모으는 한편, 집집마다 새해를 축원하고 정월 대보름에 묵은 원한과 불행을 씻어내는 종교적인 의식과 놀이를 했던게 기원이라 합니다.

보름날 저녁에 분장을 한 수양반이 주동이 되어 풍물을 대동하고 서낭당과 최영장군 사당 등을 차례로 돌면서 제물을 바치고 마을의 안녕과 놀이의 무사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동래들놀음

▲ 동래들놀음


<9> 동래들놀음
동래들놀음은 낙동강 줄기를 따라 중상류의 직업적 예인 광대탈춤의 영향 속에 형성된 영남권 탈춤문화의 한 분파입니다. 동시에 동래 고유의 큰줄 당기기와 지신밟기 등 농경예축행사와 밀접한 관련 속에 전승된 향촌의 토착 연희물이라는 점도 중요하답니다.

들놀음은 낙동강 서쪽 경상남도 일원에 분포된 오광대와는 달리 거창한 가장행렬인 길놀이가 특징인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가산오광대

▲ 가산오광대


<10> 가산오광대
이 놀이는 정월 초하룻날 천룡제를 지내고, 이어서 지신밟기를 하다가 대보름날 밤에 행해졌다 합니다. 가산오광대의 유래는 100년 전 어느 봄에 가산의 바닷가에 궤짝이 표류해 와 주민들이 열어보니 탈과 놀이의 대사가 적혀 있는 문서가 들어 있었으며 탈은 궤에 보관하다가 놀이 때에만 썼다고 하네요.

가산오광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오방신장무의 춤사위가 남아 있으며 할미가 아닌 영감이 죽는 유일한 오광대라고 합니다.
 
 

온양민속박물관에서전통탈탈춤완전대해부 1

 ▲ 고성오광대


<11> 고성오광대
고성오광대는 1910년경에 서민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오광대놀이를 시작하였고, 그 뒤에 창원오광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탈놀이로 성장한 것이라 합니다.

놀이는 문둥이춤, 오광대춤, 중춤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당쇠 등 총 1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네요.

고성오광대 놀이의 내용중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신랄하지만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인지 약한 편이라고 합니다.

이정도면 우리 전통 탈춤에 대해 충분히 공부가 되셨겠죠?
아이들과 조카들에게도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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