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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예산 탈해사에서 맛본 해탈의 행복감과 용두암의 멋진 풍경

용굴산에 핀 빨주노초파남보 단풍의 멋들어진 '붉은 아우성'

2013.11.11(월) 14:42:03 | 김진순 (이메일주소:dhjsdk44@hanmail.net
               	dhjsdk4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여성이라서 군대에 갔다 오지 않아 그 실상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남편 이야기를 들어서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약간의 ‘뻥’이 가미되긴 했겠지만 군대생활, 참 힘든 과정 다 이겨내신 분들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느닷없이 군대 이야기 하자는건 아니구요.
제가 어제 예산의 탈해사에 다녀 왔는데 탈해사 가는 길이 마치 남편이 군대에서 유격훈련 받을 때 견뎌냈다는 인내를 감당해야 하는 수준이더군요.

정말 높고 험준한 산자락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멋 모르고 차를 밑에 세워두고 걸어 올라간 것이 약간 실수였죠.

탈해사 오르는 길에 떨어진 낙엽들

▲ 탈해사 오르는 길에 떨어진 낙엽들
 

해발 440m를 오르는 동안 높고 험준했지만... 결과는 행복감 그 자체.

▲ 해발 440m를 오르는 동안 높고 험준했지만... 결과는 행복감 그 자체.


하지만 탈해사에 올라가 경내를 둘러보고 내려온 지금의 생각은?

해탈(解脫)의 두 자를 바꿔 지은 이름 탈해사(脫解寺). 말 그대로 해탈을 하고 온 기분이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온갖 잡념을 다 잊고, 또한 산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과 기쁨도 그렇고, 경내를 다 둘러 본 후 내려올때의 흠씬한 만족감까지요. 차를 두고 걸은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부처님이 절더러, 혹은 탈해사에 오르는 많은 불자들과 여행객들에게 높고 험준한 산에 오르고 내리는 동안 그 해탈의 경지에 오르도록 안내하신것 같습니다.
충남 예산군 신례원면 수철리 용굴산의 거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탈해사.
바로 아래 저 편에는 수철리 저수지가 보입니다.

용굴산이 해발 440m의 높이이고 그곳 8부능선에 자리잡고 있으니 대략 어느 정도 높이에 있는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탈해사 창건기

▲ 탈해사 창건기
 

탈해사 경내

▲ 탈해사 경내
 

범종각

▲ 범종각
 

금세라도 울릴듯한 범종

▲ 금세라도 울릴듯한 범종
 

탈해사 요사채(임진왜란때 소실되고, 모두 다 근대에 건축된거라 합니다)

▲ 탈해사 본채(임진왜란때 소실되고, 모두 다 근대에 건축된 거라 합니다)
 

극락전(임진왜란때 소실되고, 모두 다 근대에 건축된거라 합니다)

▲ 요사채
 

극락전

▲ 극락전과 산자락 전경
 

부처님상

▲ 극락전의 3불좌상
 

불자들의 기원문

▲ 불자들의 기원문
 

명부전(임진왜란때 소실되고, 모두 다 근대에 건축된거라 합니다)

▲ 명부전
 

중생들을 굽어 살피는

▲ 중생들을 굽어 살피는... 


탈해사의 창건기를 돌아 보면 1300여년전 백제 의자왕 16년 의각선사가 향천사를 창건하고 그후 법력으로 금오산 명맥인 용비산의 용비봉 아래 머무셨던 것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후에 조선시대때 명운스님이 법당을 창건하여 사명(寺名)을 탈해사라 짓고 참선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임진왜란때 왜적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현 주지스님인 이종학스님이 현재의 탈해사를 중건한거라 하네요.

건축물로는 극락전, 요사채, 산신각 등이 있으나 이들 건물과 극락전에 안치되어 있는 불상들은 모두 근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왜군에 의해 소실되고 건물이나 불상도 근대에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탈해사의 탈해사란 원래 타라암(陀羅庵 : 내가 죄를 벗었다)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것이 세월을 겪으면서 시대에 맞게 탈해사(脫解寺, 또는 해탈)가 된거라 합니다.
 

탈해사의 명물 용두암

▲ 탈해사의 명물 장수턱걸이바위(손가락바위, 용두암)
 

뒷산을 배경으로

▲ 뒷산을 배경으로
 

멀리 계곡 너머 다른 산을 앞에 두고

▲ 멀리 계곡 너머 다른 산을 앞에 두고
 

뭔가를 가르키는데...

▲ 뭔가를 가리키는데...
 

멀리 까마득한 저 아래 수철리 저수지가 보이고

▲ 멀리 까마득한 저 아래 수철리 저수지가 보이고
 

가까이로는 바로 앞산의 흐드러진 붉은 아우성 단풍이 보이고

▲ 가까이로는 바로 앞산의 흐드러진 붉은 아우성 단풍이 보이고


지금부터는 자연석 바위 하나가 그 생김새의 독특함으로 인해 많은 인기를 얻고 있고, 그래서 예산군에서는 아예 공식 안내표지까지 세워주었습니다.
탈해사 경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50여미터쯤 되는 가파른 산 경사면에 있는 이 바위는 멀리서 보면 마치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것 같다 하여 손가락 바위란 이름을 지었다 합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전통고찰 경내에 가까이 있으니 마치 부처님이 뭇 중생들을 가르치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군요.

이 바위에는 손가락바위란 이름 외에 여섯가지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을 살펴보면 작대기바위, 가세바위, 쇠서(소혀)바위, 쉬흔질바위, 장수 턱걸이바위, 용두암(용바위)입니다.참 다양하죠.

이중 장수턱걸이바위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옛날 탈해사에 도승이 한 분 계셨던 바, 자기 딸을 공양주로 보냈는데 산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던 장수가 그 처녀의 미모를 보고 탐을 냈다 합니다.
이를 안 도승이 손가락바위 끝에서 턱걸이 100번하기 내기를 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장수는 턱걸이를 99번하고 힘이 없어 쉰 길 아래 계곡으로 떨어져 죽었다 합니다. 그래서 이 바위를 장수 턱걸이바위, 또 쉬흔질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여러 각도에서 찍어 봤는데 제일 아찔한 것은 400m 아래 저 멀리 수철리 저수지를 보며 찍들 때였습니다.
 

돌아 나오며 본 경내 한켠. 겨우내 먹을 양식인 무청을 말리고 있었네요. 이걸로 맛난 시래기국을.

▲ 돌아 나오며 본 탈해사 경내.
 

한켠에선 겨우내 먹을 양식인 무청을 말리고 있었네요. 이걸로 맛난 시래기국을.

▲ 한켠에선 겨우내 먹을 양식인 무청을 말리고 있었네요. 이걸로 맛난 시래기국을.
 

산천이 참 아름답습니다

▲ 탈해사에서 내려다 본 수철리 산천이 참 아름답습니다


탈해사에서 두손모아 합장하면서 온갖 삼라만상의 잡념들을 씻어 낸후 용두암까지 보고 천천히 내려오는 길.
마음이 참 편했습니다.

거기다가 깊은 가을 아침, 산길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빨주노초파남보 단풍잎은 왜 그리도 예쁜지요.
 
탈해사 가시는 길
** 서울->서해안고속도로->대전당진간고속도로->예산.수덕사IC
->예산->예산->도시계획도로(대교)->수철리->탈해사·장수턱걸이바위
** 대전->유성IC->대전.당진간고속도로->예산.수덕사IC->예산->예산
->도시계획도로(대교)->수철리->탈해사·장수턱걸이바위
** 부산->경부고속도로->대전외곽순환도로->대전.당진간고속도로
->예산수덕사I·C->예산->도시계획도로(대교)->수철리
->탈해사·장수턱걸이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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